30일 한진해운 채권단이 경영정상화 절차(자율협약) 지속을 중단키로 한 것은 한진그룹 측이 제시한 부족 자금 조달방안이 미흡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이 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진 측의 자구노력이 부족하고 향후 업황이 좋아질지도 불확실한데 추가 지원을 결정해봤자 신규 지원자금이 해외의 다른 채권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남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채권단이 한진해운의 신규 자금 지원 요청을 거절한 근거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채권단은 우선 "한진 측의 제시안이 미흡하고 경영정상화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판단 배경을 설명했다.
한진 측의 최종 제시한이 전체 부족자금 대비 부족하고 자금 투입 시기를 고려할 때 회사 정상화에 대한 그룹 측의 의지가 미약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앞서 채권단은 자율협약 돌입 후 회계법인 실사 결과를 토대로 한진해운 부족자금이 내년까지 1조∼1조3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판단했다.
두 달 가까운 기간 줄다리기 끝에 한진 측은 한진해운 최대 주주(지분율 33.2%)인 대한항공이 4천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부족자금 조달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부족자금의 30∼50%에 불과해 이 수준으로는 당장 갚아야 하는 상거래 연체금 6천500억원을 해결하기에만도 부족하다는 게 채권단의 평가다.
산은은 이와 관련 "지원 규모 확대하는 등의 진전된 제안을 해 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한진 측이 큰 틀의 변화 없이 기존 지원 수준을 고수해왔다"고 말했다.
한진 측이 해외 용선주 및 금융사와 진행해 온 용선료 및 선박금융 협상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으로 진전된 결과를 제출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산은은 평가했다.
해운 업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는 현 상황에 미뤄 볼 때 부족자금은 회계법인 추산 최대치인 1조3천억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고, 그럴 경우 채권단이 추가 리스크를 고스란히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또 다른 결정적인 배경은 신규 자금이 해외 용선주나 항만하역업체로 고스란히 넘어갈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산은은 "채권단 신규 자금이 회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용되는 게 아니라 대부분 해외 용선주, 해외 항만하역업체 등 해외 체권단의 상거래 채무를 상환하는 데 사용돼 그대로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크다"고 내다봤다.
이달 26일 기준으로 한진해운의 상거래 채권 규모는 약 6천500억원이고, 해외 채권자에게 즉시 갚아야 할 연체금 규모가 약 6천억원에 이른 것으로 분석됐다.
마지막으로 채권단은 구조조정 원칙의 유지를 결정 근거로 들었다.
앞서 금융당국은 소유주가 있는 회사의 유동성 문제는 자구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구조조정 원칙을 강조해온 바 있다.
산은은 "현대상선이 채권단 지원없이 현대증권 매각 등 자구노력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한 만큼 한진해운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채권단 결정으로 채무 상환유예 등을 골자로 한 자율협약이 내달 4일부로 종료됨에 따라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편 일각에서는 국내 사채권자를 비롯해 선박금융과 해외 용선료, 상거래 채무 등과 관련한 해외 채권자들이 상환 유예 및 채무 재조정에 합의해 줄 경우 한진해운에 마지막 회생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국내 3위 선사였던 팬오션의 경우 STX 계열사로 있던 2013년 6월 법정관리에 들어가 선박이 대거 압류됐으나 뼈를 깎는 비용절감과 영업 재개 노력으로 2년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하림그룹에 매각된 사례도 있다.
이와 관련 정용석 산은 구조조정 부문 부행장은 "벌크선사인 팬오션과 달리 컨테이너선사인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시 해운동맹체 퇴출, 용선주들의 단선 조치 등으로 기본적인 사업 유지가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