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은 콜롬비아는 물론 남미에서 활동한 좌익반군 단체들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도 가장 커 남미 최후의 무장게릴라 조직이라는 평가를 받는 조직이다.
1964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며 창설된 FARC는 부패 공무원과 부유한 지주들에 맞서 소작농들을 보호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FARC는 콜롬비아 정부를 전복하고 기득권층을 타파하기 위해 초창기부터 반미주의를 표방하면서 정부군, 우익 민병대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였다.
FARC는 1990년대 들어 세력이 강해진 우익 민병대의 거센 공격에 직면하자 전투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마약 거래에 손을 대면서 공산주의 정권 수립이라는 초창기의 정치 이념이 변질하기 시작했다.
조직운영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코카인 밀매와 몸값을 노린 납치 등으로 마련하면서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코카인 재배 농가로부터 일명 '혁명세'라는 명목으로 돈을 걷기도 했다.
FARC는 한때 콜롬비아 각지에서 폭탄 테러를 자행하고 요인 납치를 일삼으면서 세력을 과시했다.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가운데 25∼30%는 FARC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FARC는 특히 정부 고위 공직자는 물론 군과 경찰, 외국인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납치한 뒤 몸값을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FARC가 2002년 대선 유세 중이던 잉그리트 베탕쿠르 전 콜롬비아 대통령 후보를 납치한 사건은 대표적인 납치 사례로 거론된다.
베탕쿠르는 6년 후인 2008년 정부군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됐다.
FARC의 위세가 꺾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좌익 게릴라 궤멸을 공약으로 내세운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우리베 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FARC를 주요 도시에서 산악지역으로 밀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우리베 정부는 대규모 소탕작전에 밀려 FARC 대원들이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 등지로 쫓겨나면서 인접국과 외교 갈등을 빚기도 했다.
정부의 공세와 맞물려 지도자들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FARC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8년에는 FARC의 창설자로 40여 년간 조직을 이끌어왔던 마누엘 마룰란다가 심장마비로 숨진 뒤 바통을 이어받은 라울 레예스마저 정부군 폭격으로 숨졌다.
2010년에는 FARC 2인자이자 작전사령관 호르헤 브리세노가 정부군과 교전 끝에 목숨을 잃었다.
정부 압박이 거세지자 FARC 내 분열도 일어나 특정 지역 조직 전체가 정부군에 투항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FARC는 세력 약화를 만회하려고 납치에 더 의존했으나 갈수록 싸늘한 여론에 밀려 2012년 2월 민간인 납치 중단을 선언했다.
활동이 정점을 찍었던 2002년에는 조직원 수가 2만 명에 달했지만 2000년대 들어 정부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현재는 대원수가 7천 명 안팎 수준으로 감소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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