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신화 속 곰은 원시사회의 미덕인 ‘인고’를 통해 마침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세계는 하늘과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세계였고, 곰은 한 단계 더 높은 존재로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는 어린 시절 길을 잃었고, ‘곰’이 그녀를 구했습니다. 그녀는 동굴에서 곰과 몇 년을 같이 살았고, 아기도 함께 낳아 키웠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사냥꾼이 ‘사람도 짐승도 아닌’ 여자의 아기를 죽이고 그녀를 인간 세계로 다시 데려다 놓으면서, 동굴 속 여자의 평화는 깨어져버립니다.
그녀는 인간 세계로부터 도망칩니다. ‘처음엔 그(곰)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중엔 올가미에서 빠져나오는 기분으로.’ 하지만 곰은 자기 냄새까지 모두 지운 채 이미 자취를 감춰버렸고, 여자는 곰 남편을 찾기 위한 길을 떠납니다.
그 길 위에서 극의 또 다른 중심인물인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또다시 아기를 낳아 기르기도 하죠. 파렴치한 노인도 만나고, 간이역 역장도 만나고, 여인숙 주인과도 만납니다. 그 길은 처연하다 못해 간담이 서늘해지는 장면으로 결말을 맞습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도 수많은 곰 아내들이 있습니다. 한때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며 살았지만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동굴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그 속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 가며 서서히 사라지는 사람들입니다.”라고.
인간에 의해 '야만'이란 누명을 써야 했던, 순수한 곰의 세계에 길들여진 여자에게 인간의 세계는 지독히도 폭력적이고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세계에 적응해 타인을 속이고 밟고 일어설 수 없는 인물이라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밖에 달리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건 이미 현실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이 경험하고 목격한 현상일 겁니다. 작가는 다만 '희생'을 통해 곰의 세계로 회귀할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만은 닫아놓지 않았습니다.

혹시 이 연극을 보셨다면 원작인 ‘처의 감각’도 일독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단 ‘사랑’과 ‘용서’, ‘희망’의 굳건한 신봉자인 고선웅 연출가가 무대화 한 ‘곰의 아내’와는 결말도 전체적인 느낌도 사뭇 다르고 한층 어둡다는 점은 미리 알아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고연옥 작가와 고선웅 연출가의 서로 다른 세계와, 두 세계 사이 존재하는 긴장감을 확인하는 건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이 연극을 보지 않으셨다고 해도 이 희곡을 권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맨부커상 수상으로 화제가 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 뒤지지 않을 만큼, 우리사회의 폭력성과 인간다움, 파괴와 희생이란 화두를 강렬하면서도 시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야기의 확장성과 문학적 순수성을 발견하면 오랜만에 희곡 읽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사진=연극 '곰의 아내', 제공=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