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짝 긁혔는데, 범퍼를 통째로 바꾸더라고요”
다음은 김 씨의 얘기입니다. “차가 막혀서 큰 길을 천천히 가고 있는데, 골목길로 들어가려는지 앞차가 갑자기 딱 서더라고요. 그래서 툭 부딪혔죠. 얼른 내려서 앞에 탄 남녀에게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지금은 괜찮다면서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명함을 받아갔습니다” 김씨는“범퍼를 자세히 봤는데 거의 안 보이는 수준의 아주 작은 흔적만 있었어요. 찌그러지지는 않았고요. 자세히 봤어요”라고 회상했습니다.
● 車 수리업체 “멀쩡해도 바꿔 달라고 하는데 어쩝니까”
규모가 큰 자동차 수리 업체는 범퍼를 직접 도장하고 수리할 수 있는 시설들이 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서울 강남의 한 수리 업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입차 수리로는 제법 알려진 업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리보다는 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했습니다. 이 업체의 한 직원은 “아주 경미한 사고로 살짝 흠집만 생겨도 전부 다 바꿔주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수리 업체 직원은 “고객들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의 돈이 아니고, 상대방의 보험료에서 나가기 때문에 “아예 싹 바꾸겠다”는 쪽이 많은 것 같다는 설명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살짝 상처만 있고 멀쩡해 보이는 범퍼들이 쌓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젠 살짝 부딪혀서 ‘상처’만 난 경우에는 통째로 범퍼를 교체할 수 없습니다. 지난 1일자로 새로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거나 기존 보험을 갱신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살짝 긁힐 경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 보험사, 금융 당국 “보험료 인상 요인 줄어들 듯”
자동차의 비싼 부품 교체비가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금융감독원 권순찬 부원장보 역시 이 정책을 발표하면서 “장기적으로 전체 자동차 운전자의 자동차 보험료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 “살짝 상처 난 문은 통째로 바꿔도 되나”
일단 이번 조치는 범퍼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범퍼가 가장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 금융 당국의 설명인데요. 문이나 보닛 등 다른 부품도 기준을 마련해 ‘통째로 교체’를 막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앞, 뒷문 교체 기준도 서둘러 마련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한 보험 회사에 의뢰해 앞 문 교체와 수리 가격을 알아봤습니다. BMW520의 앞문 교체 비용은 206만 원, 수리 비용은 93만 원입니다. 벤츠 E350의 경우에는 교체 비용이 221만 원, 수리비가 80만 원 수준입니다. 가격 차이가 크기 때문에 보험료 산정에 제법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금융 당국은 이런 보완 조치를 서두르는 동시에 보험사의 보험료 산정 기준에 대한 사후 감시도 강화해야 합니다. 이렇게 줄인 비용을 소비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모두 보험사들이 가져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은 매년 오르는 보험료에 지쳤지만, 반드시 들어야 하는 자동차 보험의 특성상 ‘보험사의 가격 횡포’를 견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습니다. 기왕 금융감독원이 ‘보험료 부담 줄이기’를 이번 조치의 명분으로 내걸었다면, 그 효과를 국민들이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사후 관리도 철저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