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사이 원하지도 않던 캐릭터가 어느새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은 다음 함께 팁을 요구합니다. 취재를 위해 가까이서 지켜본 그들의 삶은 복장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습니다. 날이 더워지면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복면을 연신 벗어대는 그들은 이민자가 대부분이고 영어를 제대로 못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올해 들어 팁 문제나 신체적 접촉을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여 뉴욕 경찰에 체포된 캐릭터들이 16명이나 된다고 하는군요. 지난 한 해 내내 같은 문제로 15명이 체포됐다고 하니 늘긴 늘었습니다. 관광객은 물론 경찰에게 주먹을 휘두른 경우도 있습니다. 이쯤 되자 뉴욕시가 조례를 새로 만들어 이들의 지나친 호객행위를 단속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새로 추진되는 조례안의 핵심은 타임스퀘어 광장 같은 유명 관광지를 2~3개 지역으로 나눠 상업적 행위가 가능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구분하겠다는 겁니다. 단속은 경찰이 아닌 뉴욕시 교통국이 맡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돈을 주고 관광지에 온 기분을 내고 싶은 사람들이 정해진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이 나머지 관광객들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주변을 즐기라는 겁니다.
그러자 공청회가 열린 지난달 30일 뉴욕 시청 앞에 이들 캐릭터들이 대거 몰려와 표현의 자유와 일할 권리를 내세우며 거세게 항의를 했습니다. 이때만큼은 수퍼히어로 배트맨과 악당 조커가 뜻을 함께했습니다. 힘겹게 분장을 해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를 받은 것뿐인데 자신들을 칼이나 총을 든 강도 취급을 한다며 어떤 형태의 제한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몇몇 공짜 사진을 원하는 사람들과의 다툼이나 신체적 위해를 먼저 가한 관광객들에 대한 반발을 왜 자신들의 책임으로만 돌리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시위 대열에는 시내 곳곳에서 관광객들에게 여행 상품 등을 판매하는 노조의 간부들도 있었습니다. 이들도 조례 제정에 반대했는데 자신들이 한꺼번에 같은 자리에 몰려 있으면 장사가 되겠냐는 게 이유였습니다. 자신들은 적용대상에서 빼 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였습니다.
뉴욕시는 늦어도 여름 전에는 새 조례안을 통과시켜 시행에 들어간다는 방침입니다. 시 당국의 조례 제정 방침이 알려지면서 현장에서 지켜본 캐릭터들의 팁 요구는 예전처럼 노골적이지 않았습니다. 뉴욕시는 미국 역사 내내 종교와 정치적 자유, 경제적 기회를 추구하는 이민자들을 빨아들여 경제적 성장과 문화적 다양성을 일구어냈습니다. 뉴욕시의 이번 조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