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둥지 주변 수리부엉이
당신 아내가 돌아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아름다운 모정'이라며 모르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당신이 어린 자녀들을 품고 편히 누워 쉬는데, 역시 모르는 사람들이 밧줄 타고 내려와 창문을 깨고 '단란한 가족'이라며 플래시를 터뜨린다면? 남을 무시하고 제 작품 욕심만 앞세우는 낯 두꺼운 행위로 지탄받아야 함은 물론이고 초상권 침해, 인권 훼손, 가택 침입 따위 혐의로 사법 처리 대상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사람 사회에선 엄정하게 책임 물을 사건이 자연을 향해서는 우물쭈물 넘어가고 만다. 이대로 둬도 좋은 건지 짚어볼 일이다. 최근 경기도 안산 시화호 주변에서 벌어진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서식지 훼손 사건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조류생태전문가 박진영 박사는 기자들과 현장을 돌아보고는 감탄하면서도 걱정을 드러냈다. 수리부엉이가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고, 밤눈이 특히 밝아 야간 사냥술이 뛰어나서 밤에는 제왕이지만, 어린 새끼는 아직 약하기 때문에 둥지가 드러난 상황에서는 까마귀나 까치 같은 천적에게 공격당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어미가 밤에 먹잇감을 구해다 새끼들에게 먹이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소란을 피우고 특히 불을 비추고 플래시 섬광을 터뜨릴 경우 생태를 휘젓게 된다고 말한다. 시신경이 뛰어나게 발달한 야행성 조류에 야간촬영 플래시 섬광은 시각을 떨어뜨려 새끼 돌보는 데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만큼 충분한 영양을 어미에게 공급받지 못한 새끼들은 자라는 데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리부엉이 번식 장소 주변 나무를 잘라낸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취재 전화에 대뜸 성을 내면서 자신은 딱 한 번 다녀왔을 뿐 훼손하지 않았다고 언성을 높였다. 자신은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안산시로부터 촬영허가를 받았고, 알을 품고 있을 때는 나무가 베어져 있지 않아 사진이 안 돼 안 찍었고, 3월 초 쯤 부화해서 새끼를 키울 때 가 보니 누군가가 나무를 싹 베어놨다'는 것이다. '딱 한 번 갔다'는 처음 말과 다르다. 촬영 조명 여부를 묻자 돌아오는 답변은 이랬다.
"여보슈, 대통령도 기자회견 할 때 빛을 터뜨리는 것 아니오? 광량이 부족하니까! 야간에 야행성 조류를 찍으려면 빛이 있어야 할 게 아뇨! 나는 맹금류만, 특히 야행성 조류만 전문으로 찍는 사람이야! 플래시 친다고 잘못됐다고 얘기하는데..아는 사람들이 그따위로 얘기해? 우리가 뭐 새를 잡아먹었어요? 말을 그따위로 해?"
새 사진을 20년 찍었다는 이 사람은 올해 전국 13곳에서 맹금류 사진 촬영 허가를 받아놨다고 말했다. 취미와 연구를 겸해서 앞으로 10년쯤 더 찍어서 맹금류 도감을 출판하겠다는 것이다.
수리부엉이 사진을 찍을 때는 <문화재 보호법> 상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만 허가 기준이 애매모호해서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문화재 보호법 제36조 1항)>' 규정만 했을 뿐 어떻게 해야 보존과 관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실정이 이러니 사진 잘 찍겠다고 서식지 나무를 잘라내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 문화재청 담당자의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법 앞부분에 보호 대상이 동물일 경우엔 '그 서식지, 번식지, 도래지를 포함한다(법 제2조 1항의 3, 다)고 밝혀놨으니, 법 정신을 살려 문화재청이 수리부엉이 보호에 적극 나서야 마땅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물의 서식지 번식지 도래지에 그 생장에 해로운 물질을 유입하거나 살포한 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그 물건을 몰수'하게 돼 있다(법 제100조). 수리부엉이 서식지에 밤낮 없이 4륜 구동차로 몰려와 소음을 일으키고 생태에 유해한 조명을 터뜨리는 행위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고 문화재청이 적극 나서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촬영 허가를 내줄 때 야생 조류 생태를 해치는 행위를 상세히 명기하고, 사전 장비 점검을 받으며, 촬영한 사진을 당국에 제출해 생태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았는지 검토를 거치지 않으면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보호는 헛구호에 그치고 만다.
자연 생태에 관심을 갖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정작 자연 생태가 어떤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남보다 더 아름답게 '작품'을 내려는 욕심에 자연을 훼손하고 망가뜨리는 건 문제다. 취미 여가든, 연구 교육이든 자연에 다가갈 때는 최소한의 예절이 필요하다. 특히 야생조류 사진의 경우 생태를 훼손할 우려가 큰 번식기 둥지 촬영은 금지하고, 생태 훼손이 의심 가는 작품은 심사에서 제외한다고 사진전 주최 기관이나 단체가 분명히 공지할 필요가 있다. 탐조 문화가 성숙한 선진국을 살펴보라고 박진영 박사는 조언한다. 인터넷 사진 카페나 블로그에도 새 둥지에 근접해서 찍은 것이 분명한 사진들이 자주 올라온다. 자연을 휘저은 사진에 비판을 가하는 시민 정신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이 이 땅에서 생명을 잇지 못하도록 버려둔다면, 지구 어머니와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