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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의 숨겨진 비밀? 가슴 찡한 항일 역사

[SBS 뉴스토리] 숨겨진 抗日歷史를 찾아서-‘장충단의 비밀’ 그리고 ‘베이징의 독립魂’ 

올해로 97주년을 맞이한 삼일절.

1919년 3월, 한국의 독립 의사를 밝힌 만세 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지기까지 국내외 항일역사의 발자취를 뉴스토리에서 취재했다.

● 장충단의 숨겨진 비밀? 명성왕후 살해사건

70년대까지만 해도 집회의 중심지로, 선거 때면 100만 인파가 운집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한적하기만 한 장충단에 놀라운 역사적 비밀이 숨겨져 있다. 

장충단은 1895년 을미사변 때 희생된 이들을 위해 고종이 직접 세운 최초의 국립 현충원이다. 

서울 한복판에 제단을 만든 이유는 황후의 비극적 죽음은 막지 못했지만 이후 대한제국을 세우며 자주독립국가의 기틀을 다진 고종이 일본의 만행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결의를 만천하에 공표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그러나 원래 장충단비의 자리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다. 

1910년 국권침탈 이후, 일제는 장충단을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 이토 히로부미의 추모사찰인 박문사로 세웠다. 

장소의 역사가 역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제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으니, 조선 왕조 궁궐인 경희궁 정문을 마음대로 뽑아다가 박문사 출입구로 써버렸고 장충단 전역을 공원으로 만들어 민족의 정기를 말살시킨 것이다.

● 중립국을 향한 대한제국의 열망이 담긴 벨기에 영사관

왜 고종은 이미 다른 유럽 열강과 수교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벨기에와 또 수교를 맺고 이런 멋진 영사관을 지었던 것일까. 

[벨기에는 당시 흔치 않았던 중립국이었습니다. 대한제국이 처했던 한, 중, 일 관계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대한제국을 위협하고 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하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 핵심적 답이 (중립국) 벨기에에 있었다고 (고종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고종이 아무런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일제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라는 일명 '고종무능설', '바보군주설'은 일제가 자신들의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한 열강홍보의 목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 3.1운동을 촉발한 항일독립투사의 흔적, 베이징에서 신채호를 만나다

왜 그는 동지들이 있는 상하이로 가지 않고, 이렇게 척박한 베이징에서 삶을 계속했던 것일까. 

특히 베이징은 당시 친일적 성격이 매우 강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조차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오히려 베이징의 가장 유력 언론에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글을 기고했고 루쉰 등 중국 최고 지성들과 교류하면서 한국 독립 정당성을 중국 집권층에 설파하였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일제와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그.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가족 중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며느리가 12년 전 서울에서 베이징으로 아예 이주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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