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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플러스] 차가운 바닷속에서 74년…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천도재'

여기는 일본 야마구치현 남부 우베시의 앞바다입니다.

수면 위로 콘크리트 구조물 두 개가 섬처럼 떠있는데요, 환기구입니다.

이곳은 조세이 해저탄광이 있던 자리로, 바닷속 작업자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공기 통로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하지만, 74년 전이던 1942년 2월 3일 갱도가 무너지면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183명이 깔려 숨졌고, 그 중 일본인 관리인들을 제외한 136명은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징용자들이었습니다.

현장을 다녀온 김영아 기자가 취재파일에 자세히 남겼습니다.

조세이 해저 탄광은 우베시에 있던 59개 탄광 중에서도 위험하고 열악하기로 악명이 높아 일본인들은 기피하던 곳입니다.

갱도가 너무 얕아 지나가는 배들의 엔진 소리가 들릴 정도였고 실내 온도가 높아 인부들은 반라 상태로 일을 해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조세이 탄광은 생산량에 있어 3위를 자랑했습니다.

일제와 탄광회사가 강제 투입한 조선인 징용자들 덕분이었습니다.

이들은 숙소에 감금된 채 하루 12시간씩 2교대 근무를 하면서도 회사 측이 탈출을 막기 위해 모든 임금을 강제적으로 저축시킨 탓에 돈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무리한 채탄으로 위태롭던 갱도가 바닷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순식간에 붕괴된 겁니다.

그렇지만, 회사는 수몰된 희생자들을 구조하긴 커녕 입구를 널빤지로 막아버렸습니다.

당시 환풍구를 통해 사흘간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는데도, 일제는 전쟁 중이던 국민들의 사기가 떨어질까봐 경위를 파악해 책임자를 처벌하는 대신 쉬쉬하며 사고를 덮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다 70년대 후반 들어서야, 인근 고등학교 역사 교사가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 숨겨왔던 진실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후 일부 양심적인 일본 학자들과 뜻 있는 시민들이 모임을 결성해서 1993년부터는 회비에 기부금에 대출금까지 끌어모아 힘겹게 위령제를 지내는가 하면 추도 광장과 추도비도 마련하긴 했는데요, 그 과정에 일본 정부는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고, 우리나라 정부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은 이제라도 양국 정부가 의지와 성의를 갖고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희생자들의 유골부터 발굴해 수습해주길 무엇보다 바라고 있습니다.  

[이노우에 요코/조세이탄광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회장 : 최근 강제 징용이 굉장히 주목받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조세이 탄광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진심을 가지고 이 사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받아들여서 해결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 [취재파일] 차가운 바닷속에서 74년…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천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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