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로 중국으로 끌려와 갖은 고초를 겪었던 17세 소녀는 세월이 무상하게도 어느덧 아흔을 눈앞에 둔 노인이 돼 있었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하군자(89) 할머니는 9살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읜 형편이 어려웠던 집의 맏딸이었다.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 3분 중 하나인 하 할머니는 21일 거주지인 중국 중부지방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얼굴에 패인 주름만큼이나 한 많았던 세월을 털어놓았다.
빨래를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았던 할머니는 당시 끌려오던 상황을 회상하면서 "군속(군무원)이라고 하나? 나이 든 사람이 끌고 간 거지. 산에서 나무하고 있던 나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 평양, 단둥(丹東), 톈진(天津), 난징(南京)을 거쳐 약 3개월 만에 도착한 곳은 당시 일본군 최대의 위안소가 있던 곳이었다.
쇠창살로 둘러싸인 위안소에서 하루에 10∼15명을 상대해야 하는 지옥 같은 위안부 생활은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떠올리기에는 너무도 아픈 기억이었다.
일본군에게 따귀를 맞아 너무 놀라 오줌을 쌌던 이야기를 하던 할머니의 뺨에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조금만 늦게 나왔어도, 오지 않을 수 있었는데….우리 엄마가 올 때 편지하라고 했지만 좋으면 편지를 하지만 나쁘면 편지 안 해요." 할머니는 어머니와 가족이 그리웠지만 단 한번도 편지를 쓸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위안소에서의 끔찍한 생활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끝이 나지만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일본이 지고, 여기 남은 사람은 45명이었어요. 남자는 6명이고 전부 여자들…. 죽은 사람도 있고, 물에 빠져 자살한 사람도 다 있어요. 또 남조선, 북조선으로 갈려서 못 가게 됐어요."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된 할머니는 중국 땅에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그러던 할머니는 어린 딸이 셋 딸린 중국인 남편을 만났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렸으나 다행히 남편과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잘 해줬다고 했다.
어린 딸 셋을 키우며 어려운 삶을 꾸리던 할머니는 늘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수십 년 동안 고향에 돌아갈 길이 막힌 상태였다.
중국 국적을 얻지 않고 해방 후 부여된 조선 국적을 계속 지켰으나 분단과정에서 조선 국적은 모두 북한 국적으로 분류됐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주변의 도움 속에 한국 국적을 회복한 것은 위안부로 끌려간 지 50여 년 만인 1999년이었고 2003년에야 처음으로 고향땅을 다시 밟게 됐다.
2년 가량 한국에 머물던 할머니는 중국에 둔 딸들의 권유에 따라 다시 중국에 돌아와 현재 셋째딸과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는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등에서 지원하는 매월 150여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으며 관할 총영사관도 하 할머니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할머니는 최근 한일 정부가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특히 이번 협상에서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죄를 표명했다는 것에 크게 반가워했다.
"잘못했다고, 사과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감사한가요? 옛날 할머니들은 그 소리를 못 듣고 죽었어요. 남북통일되는 것하고 사과하는 것을 못 보고…. 죽은 할머니들이 '내 돈, 안 내도 좋다. 잘못했다는 말만 들으면 됐다'고 했는데, 그 말 들으니 참 반가워요." 이런 소신을 이야기하는 할머니는 한일간 위안부 협상 타결에 반대하는 많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할머니는 약 2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도 여러 번 참가했었고 관련 세미나 등에도 피해자 증언에도 수차례 참석한 바 있다.
"왜 생각이 안 나겠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와서 '잘못했다 말하라, 배상하라'라고 하는 할머니들 생각이…이렇게 말하면 할머니들, 그 친구들이 나를 중국에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욕할 수도 있지만 나를 나쁘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는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예요." 하 할머니는 "돈 누가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라면서도 "먹고 입는 거 나라에서 내고 주니까 남의 땅에서 먹고 살면 됐지요"라면서 배상보다는 일본 정부의 사과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中 거주 위안부 할머니의 눈물로 회상한 한맺힌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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