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9일 <SBS 8 뉴스> 中-
▶ [단독] 매 맞는 어머니…11살 소년이 아버지 살해
언론은 이번 사건에 존속살인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11살짜리 남자 아이가 감당하기엔 무거운 죄목입니다. 사건의 속을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안타까움도 묻어납니다. 불편한 이야기를 굳이 다시 꺼냅니다. 가정폭력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 평범한 줄로만 알았던 가정
지난 9일 찾은 경기도의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엔 11살 A군의 것으로 보이는 스케이트보드와 여동생이 타던 핑크색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는 평범한 가정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사건 현장을 잘못 찾은 줄 알았습니다. 여기서 상습적인 가정폭력이 있었고, 아들이 아버지를 흉기로 찔렀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동네 주민들은 며칠 전 일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7일 밤, 이 아파트 단지 안으로 구급차와 소방차가 연신 드나들었습니다. 경찰들도 새벽까지 찾아왔습니다. 주민들 사이엔 “응급 환자가 생겼단다”, “폭력사건이 있었단다” 같은 소문만 돌았다고 합니다. 그리곤 곧 이 일은 잊혔습니다.
고인이 된 A군의 아버지는 이웃과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어머니가 같은 아파트 입주민들과 비교적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공식 직함은 아니지만, 부녀회장을 하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아침이면 아이들을 등교시키느라 정신이 없었고, 한가해진 오후엔 다른 아주머니들과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었다고 합니다. 보통의 주부들처럼 말입니다.
A군과 A군의 어머니는 이웃들에게 “아빠가 때렸어요”, “남편에게 맞았어”라고 가끔 말했다고 합니다. 은연중에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음을 고백한 겁니다. 하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남의 집 일이다보니 참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A군과 A군의 어머니가 예전에 했던 말들을 다시 기억해낼 수 있었습니다.
● 결국 아버지 살해…가정폭력의 끝 존속살인
A군의 아버지는 평소 부인의 귀가시간에 특히 민감했습니다. 엄마가 집에 늦게 들어오면 그날은 꼭 한바탕 시달렸습니다. A군의 경우엔 반찬투정을 했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폭력 뿐 아니라 폭언도 일상적이었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SBS 취재진에게 꺼낸 이야기입니다. 평소 A군의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만 전합니다.
"친구하고 밥 먹고 늦게 들어갔는데 그 다음 날인가, 얼굴이 멍이 들고 많이 부었더라고요. 왜 얼굴이 그렇게 됐냐고 하니까 남편한테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체구가 작았어요. A군의 어머니는 (체구가) 컸죠. 저항을 하지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힘이 너무 세’라고 말했어요. 아이(A군)랑 같이 맞았다고 말한 적도 있었어요.”
"아이(A군)도 그런말을 했어요. 아빠가 때렸다고. 아이가 아빠를 좀 싫어했었어요."
비극이 벌어진 지난 7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A군의 어머니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다 밤 10시쯤 집에 들어갔습니다. 남편의 구타가 시작됐습니다. 옆방에서 엄마의 울음 섞인 비명을 듣던 A군은 부엌에서 흉기를 가져와 아버지의 복부를 한 차례 찔렀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은 설마 아버지가 사망할 줄은 몰랐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현장에 출동했던 구급대원도 “출혈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CCTV엔 아버지가 비교적 의식이 있던 상태로 실려 가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간간이 구급대원들과 대화도 나눴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야 흉기가 급소에 박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4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정폭력이 비극으로 막을 내린 겁니다. 아들은 아직도,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 “남의 일이니까” "보복 당할까봐"…방치하다 곪아
통계를 보죠. 가정폭력은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찰이 가정폭력 사범을 접수해 실제 검거까지 한 사례는 2011년 6848건에서 2012년 8762건, 2013년 1만6785건, 2014년 1만7557건으로 매년 늘어났습니다. 지난해 8월까지만 2만5653건이었습니다. 집계되는 수치만 이 정도입니다.
가정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가 다른 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지난 달 벌어진 인천 아동학대 사건을 보죠. 딸을 감금했던 아버지는 “나도 어렸을 때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습니다. 2년 전엔 아버지로부터 학대와 폭력에 시달린 지적장애 아들이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법은 있습니다. 가정폭력특례법입니다. 현행법상 가정폭력으로 인해 신고를 받으면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피해자를 육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법 자체로는 강력한 편입니다. 문제는 신고율입니다. 본인이 직접 신고하는 경우는 0.8%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웃들도 망설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맞고 사는 게 부끄럽고 창피해서”, “남의 집안 일이니까”, "행여 보복이라도 당할까봐"가 주된 이유입니다.
다시 이번 사건으로 돌아와 보죠. A군은 이제 어떻게 될까요. A군은 올해 만 11세입니다. 법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 '촉법소년(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로서 형벌을 받을 범법행위를 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 관계만 봤을 때, A군 역시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비슷한 판례를 보면 가능성은 더 높아집니다. 지난 1990년 4월, 술에 취한 채 아내와 아이들을 폭행한 아버지를 죽인 13살, 12살 두 딸과 9살 막내아들에 대해 소년원에 보내는 대신 가정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당시 만 9살이던 막내 아들은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았습니다.
오늘(12일)은 A군 아버지의 삼우제입니다. 아직 경찰은 A군 어머니와 A군을 조사하지는 않았습니다. 경찰 역시 지금의 상황이 조심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은 우선 A군의 어머니를 먼저 불러 조사한 뒤 A군 조사 시점을 조율할 계획입니다. 조사가 마무리되면 A군을 법원 소년부로 송치할 방침입니다. 형사 입건이나 기소를 할 수 없는 만큼 법원에서 소년원 송치, 사회봉사 같은 보호 처분을 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A군은 이번 사건이 없었다면 두 달 뒤 5학년에 진학할 예정이었습니다. A군은 어떤 새학년 생활을 꿈꿨을까요. 스케이트보드는 다시 예전처럼 탈 수 있을까요. (아주 어려운 일이겠지만) 제2·제3의 A군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적어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가 올 해 만큼은 지난 해보다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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