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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루벤스는 '딸바보'?

'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 展

● 이 그림의 주인공은?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의 초상'>  
PhotoⓒLIECHTENSTEIN. The Princely Collections, Vaduz–Vienna.

살구가 연상되는 발그레한 볼에 야무진 입술, 볼록한 이마, 빛나는 머리카락...  반짝이는 눈동자는 화폭 밖의 관람자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듯하다. 영상으로 치면 ‘클로즈업’이라 할만큼, 얼굴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이 사랑스러운 그림의 제목은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의 초상’이다. 제목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우리가 다 아는 그 유명한 화가 ‘루벤스’의 딸이다. 1616년쯤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 속 클라라는 당시 다섯 살이었다.

이 작품이 전시되는 ‘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 전시의 도록에서는 이 그림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유럽 미술사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어린이 초상화 중 하나로 꼽히며, 그 어느 작품보다도 관람자가 아이와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게 만든다. … 경계심 없이 감상자를 바라보는 모습은 당대 초상화 작품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으로, 딸과 화가인 아버지 사이의 친밀감을 표현한다.”

무엇보다 이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루벤스가 누구의 의뢰도 받지 않고 자신을 위해 그렸다는 점이다. 루벤스는 17세기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친 화가였던만큼, 왕실과 귀족들의 밀려드는 그림 주문으로 조수를 여럿 둬야 했을 정도로 바빴는데, 이 그림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개인소장용으로 그렸다. 가로 27cm, 세로 37cm로 크기도 아담하다. 캔버스도 비싼 패널을 사용해 만들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파손 위험이 커서 보관이 어렵다고 한다.

이 그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리히텐슈타인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 박물관이 특히 아끼는 작품이고, 독보적인 매력이 있는 작품인만큼, 전시장 한쪽 공간을 모두 할애해 전시중이다. 그림 앞에 서서 소녀와 눈을 맞추고 있자면, 거장의 ‘딸바보’ 같은 인간적 면모가 느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랑스러운 딸 클라라는 12살에 병으로 세상을 떴다. 그리고 3년 후엔 클라라의 어머니 아사벨라도 흑사병으로 세상을 떴다.)

  
● 피터르 파울 루벤스 (1577~1640)

루벤스, 그림을 직접 본 적은 없어도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을 화가다. 특히 ‘플란다스 개’를 읽어본 독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주인공 소년 네로가 금화 한 닢을 내고 봤던 그림이 바로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였고, 마지막까지 보고 싶어했던 그림이 루벤스의 ‘성모승천’이었으니 말이다.

네로만큼은 아니더라도, 루벤스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던 사람들에게, 이번 전시는 반가운 소식이다. 유럽의 대표적인 왕실 박물관인 리히텐슈타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루벤스의 주요 작품이 대거 한국에 왔기 때문이다.
<아기 에리크토니오스의 발견> 
PhotoⓒLIECHTENSTEIN. The Princely Collections, Vaduz–Vienna.

이 그림, ‘아기 에리크토니오스의 발견’도 한국에 처음 온 루벤스의 작품 중 하나로, 신화 속 이야기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번 전시도록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불칸은 처녀인 미네르바를 겁탈하려고 했다. 미네르바는 몸을 피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불칸의 정액이 땅에 떨어졌는데, 이로 인해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에리크토니오스를 잉태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인 가이아는 에리크토니오스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 결과 에리크토니오스는 뱀의 발을 지니고 태어나게 된다. 미네르바는 가이아 대신 에리크토니오스를 거두어들였고, 바구니 상자에 아기를 숨겨 케크롭스왕의 딸들에게 맡기며 절대 바구니를 열어보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딸들 중 한 명인 아글라우로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해 바구니를 열고 만다.…”

이 작품은 인문학에 강했던 루벤스의 면모가 잘 드러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루벤스는 인문학에만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스페인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한 외교관이었고, 평화주의자였다. 전시장 한 켠에 마련된 루벤스의 연표를 보다 보니, 이런 문구가 눈에 띄었다.

“나는 낮에도 밤에도 계속되는 긴급한 임무에 둘러싸여
마치 미로에 갇혀 있는 듯하다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이 야망의 황금줄을 끊어 내버리는 수 밖에 없어.
사람은 내리막길이 아닌 오르막길에서 그만두어야 하는 법.
운명의 여신이 아직 내 편일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지.”  


1634년 12월, 지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루벤스는 1635년부터 안트베르텐 남부의 성에서 풍경화를 주로 그렸고, 1640년 세상을 떴다.


● 플랑드르의 화가들

‘플랑드르’,  ‘플란더스의 개’의 ‘플란더스’가 바로 '플랑드르’ 지방이다. 안트베르펜, 브뤼헤, 브뤼셀 등지를 일컫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루벤스 외에도, 같은 시기 플랑드르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대표적 예술가 가문 ‘브뤼헐 일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PhotoⓒLIECHTENSTEIN. The Princely Collections, Vaduz–Vienna.

피터르 브뤼헐 2세가 1607년에 그린 ‘베들레헴의 인구조사’라는 작품이다. 그림 아래쪽 가운데에 있는 푸른 옷을 걸치고 당나귀를 탄 여성이 마리아이고, 톱을 메고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요셉이다. 성경 속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썰매를 타고, 눈싸움을 하고, 모닥불을 쬐는 등 플랑드르 지방의 겨울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어 눈을 뗄 수 없다.

이번 전시에서는 루벤스의 친구인 야코프 요르단스, 루벤스의 제자로 초상화의 대가인 ‘안토니 반다이크’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추운 겨울, 미술관에서 만나는 4백 년 전 화가들의 작품은 우리를 그 시대 유럽으로 훌쩍 데려다 놓는다. 전시는 4월 10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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