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이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잘 알기 어려운데 다른 나라 정치인들까지 아는 건 번거로운 일이다. 더구나 한 당의 대선 주자로 10여 명이 뛰어들고 대부분 완주할 태세다.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성공사례다. 이런 저런 노이즈 마케팅으로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그런데 테드 크루즈(Ted Cruz)가 트럼프를 위협하고 나섰다. 크루즈가 누구야? 크루즈가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고 국내에 얼굴이 알려진 적이 있다.
2013년 9월 25일의 일이다. 공화당의 보수파 상원의원인 크루즈는 의사당 연단에서 '1인 쇼'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역점 의료 보건 정책인 '오바마케어'에 반대하는 연설을 시작했는데 무려 21시간 19분을 이어갔다. 장시간 연설로 밑천이 떨어지자 자신의 성장사를 소개하는가 하면 딸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까지 했다.
정식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아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술이었다. 그가 연단에서 내려오자마자 공화 민주 양당은 오바마케어가 포함된 예산안을 표결에 부쳤다.
크루즈는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잠룡'으로 또 보수의 총아로 눈길을 끌었다. 그를 필두로 한 이른바 '티파티(Tea Party)‘ 세력은 공화당 내의 강력한 극우 분파로, 퇴로를 모르는 무모한 강경책은 당시 존 베이너 하원의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에 큰 부담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를 마비 지경으로 몰고 간 지 2년 남짓 만에 그런 크루즈가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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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가 떴다. 도널드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의 역풍을 만나 표류하는 사이 크루즈는 순항하고 있다. 크루즈는 1970년 생으로 곧 만 45살이 된다. 트럼프는 1946년 생으로 만 69살이다.
대선 후보를 뽑는 첫 코커스(caucus)가 열리는 '정치 1번지' 아이오와 주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서 크루즈가 잇달아 트럼프에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2% 포인트에서 10% 포인트 차까지 편차는 크지만 수치상 1등은 1등이다.
그렇다고 물러설 트럼프가 아니다. 골수 트럼프 지지자들의 충성도는 총격 테러와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 파문 뒤 더 탄탄해졌다. 아이오와가 아닌 전국 조사에서 트럼프가 앞서고 있다. 몬마우스 대학 조사에서 트럼프는 41%를 얻어 14%의 크루즈를 압도했다. 지난 조사 때보다 13%P를 높이며 전국 조사에서 40%대를 넘어섰다.
아이오와는 크루즈, 전국적으로 보면 트럼프가 우위다. 주류 정치인 대 사업가 출신 비주류 주자의 맞대결 양상으로 공화당 경선의 흐름이 좁혀지고 있는 데 언론들은 주목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크루즈 소식을 1면에서 전하면서 빅데이터를 활용해 유권자들 마음을 읽는 선거 전략을 배경으로 꼽았다. 자력으로 공화당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판세는 유동적이다. 소수계가 등을 돌리면서 공화당의 백악관 탈환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트럼프는 앞서 멕시코 이주민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막말을 쏟아내 물의를 일으키며 출마 신고를 했다. 이에 반발해 히스패닉을 대거 유권자로 등록시켜 트럼프를 낙선시키자는 운동에 불이 붙었다.
● 견제 나선 트럼프…당심(黨心)은 어디로?
트럼프는 유력 방송 채널의 주말 인터뷰 릴레이에서 크루즈를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매니악(maniac)’이란 표현을 썼다. 크루즈가 의회에서 하는 걸 보면 좀 미친 것 같다고 힐난했다. 그렇게 해서는 될 일도 안 된다,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2년 전 '사이비 필리버스터'나 티파티 식 강경 일변도의 정치 노선을 가리킨 것이리라.
트럼프는 그러면서 자신은 강한 기질의 소유자다, 판단력이 좋다고 스스로를 추켜세웠다. 오늘날 IS 사태의 불씨가 된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다며 그 예로 들었다.
하지만 정치적 성향은 크게 봐서 겹치는 부분이 많다.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에 크루즈는 다른 주자들과 달리 대놓고 비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트럼프와 크루즈는 외견상 대조적이다. 트럼프가 막말을 쏟아낼 때 크루즈는 점잖게 연설했다. TV 토론에서도 말끔한 태도로 유권자들에게 다가섰다.
(크루즈 하면 청바지에 가죽 부츠를 신은 텍사스 카우보이가 떠오르지만 근래 좀 달라졌다.) 같은 보수라도 무슬림을 비롯한 소수계의 등이 돌아서게 할 무모함은 찾아볼 수 없다. 크루즈 스스로가 조상이 쿠바에서 건너온 히스패닉계 이주민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가 쿠바계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대책본부장인 존 포데스타는 공화당 맞수로 먼저 크루즈를, 다음으로 트럼프와 마르코 루비오를 꼽았다. 유권자들은 클린턴을 꺾을 후보로 트럼프와 크루즈가 아닌 벤 카슨과 루비오를 꼽고 있다. (NBC-월스트리트 저널 조사)
그렇다면 공화당의 당심은? 현지 시간 15일 라스베이거스에서 CNN 주최로 열리는 TV 토론이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 같다. 내년 2월 아이오와 코커스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7월 전당대회까지 갈 길은 아직 멀다.
(사진 = 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