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만 씨는 미숙아로 태어나 몸 전체를 통틀어 혀 외엔 움직일 수 없는 최중증장애인입니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아 혀를 움직여 사용하는 자판을 이용해 간단한 필담 나누는 정도가 가능합니다.
김 씨는 부모님 없이 여동생과 둘이 지내고 있는데요, 이런 김 씨에게 하루종일 손과 발이 되어주는 건, 국가에서 급여를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보조인입니다. 식사와 용변처리, 스트레칭부터 때때로 베개가 움직여 고개가 잘못 젖히거나 몸에 무리가 가면 생명에 위협이 되는만큼 지속적이고 세심한 보호를 해주고 계십니다.
24시간돌봄이 필요한 율만 씨에겐 정말 없어선 안될 존재인 거죠. 기자가 취재를 위해 머무는 잠시 동안에도, 보조인은 쉼없이 율만 씨의 눈물을 닦고 자세를 바로 잡아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달 1일 아침, 출근한 활동보조인의 단말기(업무 시작과 종료를 입력해 지원비 계산)에 김 씨에 대한 활동지원 시간이 기존 月 496(국가 지원 401+서울시 지원 95)시간에서 273시간 줄어 223시간이 됐다고 찍혔습니다.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인데요, 이유를 몰랐던 김 씨와 보조인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율만 씨의 동생이 올해 만 18세가 되면서 취약계층에서 제외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엔 1급 장애인 기본급여에 동생이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받는 취약계층 1급 추가급여(月 273시간) 대상자였습니다. 현 시스템 상 장애인활동보조 지원으로는 최고 수준인데요, 이번에 추가급여 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장애인 1급 기본만 제공받는 셈이 된 겁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활동보조인은 하루 7시간 밖에 머물지 못합니다.
1. <김 씨와 보조인 모두 왜 미리 고지받지 못했나>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활동보조인 지원 시간 삭감은 율만 씨에겐 일대 사건입니다. 왜 이런 사실을, 구청은 미리 고지하지 않고 직권으로 중단해 버린 걸까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율만 씨와 보조인은 백방으로 이유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이미 속이 새까맣게 타 버린 상태였습니다. 활동보조인의 설명에 따르면, 율만 씨는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잊혀져 방치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지난 며칠동안 밤잠을 설쳐 몸이 급속도로 나빠졌다고 합니다.
구청을 찾아갔습니다. 담당 직원은 몇 차례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번호가 바뀌어 통화 연결이 안됐다고 해명했습니다. 직접 방문을 해서라도 본인에게 이런 사실을 말해야 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지자체에 추가급여를 중단해 달라고 알리는 것은 오히려 김 씨 쪽 의무였다'고 했습니다.
동생이 성년이 됐으면, 이제 활동급여를 줄여달라, 이렇게 율만 씨가 지자체에 먼저 신고했어야 했다는 겁니다. 동생 생일이 올해 4월이었으니 지난 7달 동안 부당 급여를 받은 셈이 되는데, 나중에 추징될 수 있어 연금공단 모니터링 단계에서 발견하자마자 직권으로 중단한 것이란 설명인데요, 활동보조인 관련 사업내용을 뒤져보니 정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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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급여의 중지
○ 수급자가 추가급여 수급요건에 해당되지 않거나 수급요건에는 해당하지만 본인이 희망하지 않아 추가급여를 중지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읍·면·동에 추가급여 중지 신청서 별지 제6호서식)를 제출하여야 함 - 추가급여 중지사유가 확인되었으나 신고하지 않은 경우 부정수급 방지 등을 위해 특별자치도·특별자치시·시·군·구 담당자는 수급자의 신청이 없더라도 직권으로 처리 가능 ○ 추가급여 중지신청서를 접수한 읍·면·동은 이를 확인하고 추가급여 중지를 접수 등록 후 행복e음을 통해 특별자치도·특별자치시·시·군·구로 즉시 전송 ○ 특별자치도·특별자치시·시·군·구는 중지대상자에 대하여 추가급여의 중지를 처리하고, 행복e음을 통해 정보개발원 및 공단에 전송 /활동보조인 사업안내 中 |
이런 사실을 알리자, 율만 씨는 '들어본 적 없다'고 했습니다. 9년 전, 처음 서비스를 신청할 때, 관련 설명을 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율만 씨는 현재 사이버대학에서 인터넷 수강을 통해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자와 메신저를 사용해 대화를 나눌 때에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하나 틀리지 않습니다.
본인의 상황이나 관련 정책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높은 편입니다. 미리 알기만 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대비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찾아가는 복지'를 강조하는 요즘 정부의 방침으로 비춰 봤을 때,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적어도 주소지를 방문해 본인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이를 지적하자 구청 측은 '고지하는 과정에서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전해 왔습니다.
2. <사실상 부양능력 없는 가족으로 인한 추가급여 중단의 위험성>
국민연금공단과 보건복지부는 '급여 산정은 관련 법에 근거한 것이므로, 추가급여 중단 자체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건과 관련해 보건복지부가 율만 씨에게 보낸 답변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 평소 장애인활동지원제도에 대하여 관심과 애정을 주신데 대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귀하께서 기존 수급받던 추가급여 중 취약가구에서 제외됨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이 발생한 것에 대하여 먼저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현행 제도상 취약가구의 범위를 18세 미만으로 정한 것에 대하여는 한정된 재원으로 복지서비스를 모두 충족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성인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취약가구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음을 널리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해당 구청에 지원방안에 대하여 적극 협조를 요청하였으나, 지자체의 경우도 재원 등에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향후 교육을 강화하여 지자체에서 충실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부에서는 중증장애인의 상시 활동지원을 강화하기 위하여 활동지원 대상 및 급여 확대, 응급안전서비스 제공, 주간활동서비스, 야간순회방문서비스 도입 등 다양한 돌봄서비스 제공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향후 실태조사를 통해 중증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급여체계를 개편하여 개인별 맞춤형 활동지원서비스 제공 방안을 검토할 계획임을 알려드립니다.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사항에 대하여는 장애인서비스과 XXX(044-202-33XX) 또는 보건복지 콜센터(129)로 문의하여 주시면 친절히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단 한 명 있는 가족이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지원 시간을 절반 넘게 줄이는 부분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실제 부양력이 있는지, 소득이나 직업을 따져보지도 않고 '성인이 되었으니 어떻게든 아픈 가족을 책임지라'는 법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만 18살이면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입니다. 학교를 다니며 그간 여동생이 무슨 준비를 할 수 있었을까요?
만 18세. 율만 씨의 여동생은 18살이 되었다는 이유로 졸지에 오빠를 부양하면서 동시에 곁에서 돌보는 일을 한꺼번에 맡게 되었습니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좀 더 이용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럼 당장 오빠는 어떤 돌발상황이 일어날 지 모르는 상태에서 홀로 누워있어야 합니다.
미리 고지되지도 않았던 이런 변화에 동생과 율만 씨 모두 크게 낙심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차츰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이번 주, 이번 달을 어떻게 버텨야 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케이스는 더 있을 겁니다. 복지부 답변처럼 한정된 재원이 문제라고 하기엔 최중증장애에 취약계층 보호를 받고 있는 장애인은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 첨부표: 보건복지부 제공, 활동보조인 추가급여 현황, 10월 말 기준) 우선 순위에 대한 판단이야 다를 수 있겠지만, 율만 씨 네 가족에겐 지금 당장 생명과 직결된 긴급한 문제로 보입니다. 고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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