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공연에선 보통 무용수의 춤 동작이 중심에 서고 이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음악이 배경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닙니다. 드물지만 음악이 공연의 중심에 서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안무가 활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 드문 공연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작품의 제목은 ‘푸가(fugue)’. 푸가는 하나의 테마(주제)가 다른 파트(성부)에 규칙성을 가지고 계속해서 모방 반복되어 가는 악곡형식을 일컫는데, 바흐에 이르러 마침내 완성됐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정영두 안무가의 연출로 무대에 올려진 ‘푸가’는 바로 바흐의 푸가 음악들을 주제로 만들어진 공연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고전발레와 현대무용에 있어 국내 최정상의 무용수들이 대거 출연한다는 점입니다. 국립발레단의 대표 발레리나 김지영 씨와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 발레리노 엄재용 씨가 처음으로 만나 호흡을 맞췄고, 윤전일, 최용승, 김지혜 씨 등 잘 알려진 다른 무용수들도 등장합니다.
푸가 음악을 몸을 통해 보여주는 공연인 만큼 무용수들은 박자와 멜로디에 맞춰 다양한 동작들을 표현해냅니다. 정영두 안무가는 이번 작품에 대해 ‘무용수들의 앙상블을 위해 음표 하나하나, 박자 하나하나까지 분석해 안무를 구성했다’며 ‘1000가지 동작이 들어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실제 공연을 보면 안무가의 말을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무용수는 음표 하나하나의 장단에 맞춰 발끝을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합니다. 몸의 곡선을 통해 멜로디의 움직임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아, 음악을 눈으로도 들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렇게 ‘눈으로 듣는 음악’은 ‘푸가’뿐만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올 상반기 본 무용공연 중에서 최고로 꼽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멀티플리시티(Multiplicity, Forms of Silence and Emptiness)와 국립발레단이 선보인 ‘교향곡 7번’도 이렇게 음악을 몸으로 표현한 작품들입니다.
특히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나초 두아토(Juan Ignacio Duato Barcia)가 안무를 짠 ‘멀티플리시티’는 ‘바흐 예찬’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바흐의 다양한 음악들을 사용해 그의 삶을 무대로 옮긴 작품입니다. 작품 속에서 무용수들의 몸은 거대한 음표가 됐다 악기가 되기도 합니다. 바흐의 악상이 되기도 합니다. 안무의 단단한 짜임새와 시각적 아름다움이 놀라울 정도이고, 무용수들의 표현력 또한 인상적입니다.
이번 공연은 ‘멀티플리시티’ 같은 공연에 비하면 규모나 안무의 짜임새 면에서 조금 시시하고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소속의 무용수들이 모였고 게다가 초연이다 보니 동작의 완성도도 상대적으로 부족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무용 공연을 보신 적이 없다면 충분히 흥미롭게 보실 수 있는 요소가 많은 공연입니다.
김지영 씨와 엄재용 씨의 현대무용 도전도 볼 만하고, 서로 다른 스타일의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어우러지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을 귀가 아닌 눈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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