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년아, 밥 줘!"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밥때가 되면 꼬박꼬박 투정을 한다.
며느리가 상을 차려주면 시어머니는 밥상을 엎으면서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한 장면이다.
치매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다뤄지는 내용이다.
하지만 실제 환자 가족들이나 치매 관련 전문가들은 "미디어에서 나오는 치매환자와 가족들의 고충은 무척 제한적"이라고 지적한다.
서울시와 서울광역치매센터가 매년 발간하는 치매환자 가족들의 체험 수기에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 "누구세요" 하던 치매 엄마가 얼마 뒤엔 폭력을
치매 환자 가족들은 환자에게 병마가 찾아온 사실을 환자의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진 모습을 보고 처음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모씨는 어느 날 어머니가 막내딸인 자신에게 "넌 누구니?"라고 물었을 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치매에 걸린 모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과 사위의 존재도 잊어버렸다.
치매환자는 지능이 유아 수준으로 떨어져 투정이 많아지는 데 힘은 어른의 것 그대로이다 보니 환자 가족들의 몸은 멍투성이인 경우가 적지 않다.
김모씨는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에 대해 "일흔이 훌쩍 넘고 체구도 작은 분이 어디서 그렇게 힘이 솟아나 마주하는 사람마다 시비를 걸어대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김씨는 "어머님이 갑자기 '반찬을 하겠다'며 부엌칼을 찾으실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때로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7월 부산 해운대에서는 70대 치매 노인이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하고 나서 투신자살했고, 대구에서는 6월 50대 아들이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베개로 얼굴을 눌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모든 치매환자가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서울광역치매센터 관계자는 "폭력성은 중증 치매환자에게 많이 발생하는 증상이지만 미디어에 극단적인 모습이 비치면서 일반인들이 '치매 환자는 모두 폭력적'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 "맞벌이 꿈꾸며 결혼했는데…" 보호자 삶도 치매에 매몰
대부분의 치매환자 가족들은 가족의 병을 돌보다가 완전히 희생돼 버린 자신의 삶에 대해 말로 표현 못 할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치매인 김모씨는 "늦은 나이에 중매로 남편을 만났는데 '어머니가 4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지만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고 해 청혼을 받아들였다"면서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어머님의 상태는 훨씬 심각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힘들게 첫 아이를 가졌지만 임신 중에도 시어머니의 막말을 견디며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5년째 아내의 치매를 돌보는 김모(84) 할아버지는 "보호자의 인생은 치매에 매몰된다"면서 "보호자 역시 자기 건강과 스트레스 관리에 철저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매환자 가족들은 "치매인가 봐"라며 뒤에서 쑥덕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 때는 환자의 투정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털어놓았다.
4년 전 언니가 치매에 걸린 박모씨는 "언니가 동네에서 길을 잃거나 하면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마저 뒤에서 혀를 차더라"면서 "그 꼴을 도저히 보기 어려워서 남편 허락을 얻어 언니를 우리 집으로 이사시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는 "이웃 어르신들의 '병시중하느라 애쓴다. 대단하다'는 칭찬도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고깝게 들리더라"고 털어놨다.
환자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지만 주위에 불효한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병원이나 관련 기관에 환자를 보내지 못하고 직접 감당하는 가족도 적지 않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는 김모씨는 "왜 시설에 보내지 않느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씀도 거동도 못하시는 어머님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는 것도 결정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광역치매센터 관계자는 "우리 사회는 치매를 유독 큰 병으로 생각해 혀를 차며 동정하곤 한다"면서 "그럴수록 치매 환자와 가족들은 집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치매도 하나의 병이기에 주기적인 검진을 통해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미 진척이 됐을지라도 병원에 입원하거나 보조센터에 적극적으로 다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치매 환자 가족들의 고통…"주변 시선이 더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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