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르빠주 연출의 연극 ‘바늘과 아편(Needles and Opium)’이 사흘간의 짧은 일정으로 국내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로베르 르빠주는 무대 공중에 매달린 거대한 ‘큐브’를 이용해 다양한 ‘극의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그 장면들이 시각적으로 무척이나 아름답고 신비로워 ‘무대 위의 마술사’로 불리는 르빠주의 명성을 거듭 확인시켜줍니다.
여기에 현재의 인물이자 허구의 캐릭터인 캐나다 출신 배우 로베르가 더해집니다. (극 연출가의 이름이 로베르 르빠주. 그렇습니다. 로베르는 연출가가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시킨 캐릭터로, 이 작품이 초연된 1991년에는 르빠주처럼 30대 남성으로 그려졌지만, 2013년 다시 만들어진 버전에서는 50대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자존감이 부족하고 남의 말에 좌지우지 되는 심약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 극 중에서는 실연의 고통에 허덕이다 최면치료를 받기 위해 전문가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 작은 공간은 다양한 호텔방과 사무실로 변신하더니 뉴욕과 파리의 뒷골목을 거쳐 급기야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작은 우주를 품습니다. 더 나아가 한 인물의 의식세계, 마약에 취한 환각의 세계까지 담아냅니다. 로베르가 현실의 공간을 부유하다가 회전하는 몽환적 배경을 뚫고 사라지는 장면은, 트레인스포팅에서 마크가 화장실 변기를 통해 깊은 물속으로 표현된 의식의 세계로 빠져나가는 장면이 연상될 만큼 참신한 연출이었습니다.
르빠주는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걸 눈앞에 펼쳐 보여주는데, 그 작업을 독창적이면서도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준으로 완성해낸다는 점에서 뛰어난 면이 있습니다. 여기에 이런 뛰어난 시각적 효과 속에서도 그가 전하는 스토리와 그 안의 등장인물들이 여전히 압도당하지 않은 채 본연의 매력을 유지한다는 점은 연출가로서 르빠주의 또다른 미덕이라 할 만 합니다. 극중 인물들의 상실과 고독, 중독과 불안의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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