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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삼겹살·보약 먹이느라"…올림픽 영웅들의 해명

[취재파일] "삼겹살·보약 먹이느라"…올림픽 영웅들의 해명
경찰이 6월 24일 유도계 비리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선수 부정 출전, 승부 조작, 여기에 뒷돈 거래까지…. 경찰의 발표대로라면 유도 종목은 '비리 백화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동안 국제 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여온, 그야말로 '효자 종목'이었기에 충격은 더 컸습니다. 더군다나, 온 국민의 환호를 이끌어냈던 올림픽 영웅들이 의혹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 경찰 "7년간 부정 출전 선수만 107명"
[취재파일] 김지성 유도 부정
경찰은 먼저, 전국체전에서 유도 선수들의 부정 출전이 만연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차례 열린 전국체전에 부정 출전한 선수만 107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이 출전한 횟수는 179차례였고, 이렇게 해서 딴 메달은 금메달 5개, 은메달 21개, 동메달 32개, 모두 합쳐 58개였습니다. 부정 출전으로 입건된 대학 교수들과 전국 시도 체육회 관계자, 시도 유도회 관계자는 40명에 이릅니다.

'부정 출전'이란, 아무런 지역적 연고가 없는데도 특정 시도 대표로 뛰는 경우를 말합니다. 대한체육회 규정상 전국체전에 출전하려면 대학부의 경우 ① 선수 등록지 ② 중·고교 연고지 ③ 출생등록 기준지 ④ 출생지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해야 그 시도 대표로 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선수가 서울 대표로 전국체전에 나서려면 서울에서 태어났거나, 아니면 서울에 있는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를 나왔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 선수가 현재 속한 대학이나 실업팀이 서울에 있어야 합니다. 군인의 경우는 ① 주둔지 ② 출생지 또는 중·고교 졸업 연고지 ③ 입대 당시 선수 등록지 중 하나를 만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경찰이 최근 7년 동안 전국체전에 출전한 유도 선수들 가운데, 이 조건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이 안 되는 경우만 따져봤더니 무려 107명에 달하더라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중·고교를 나오고 대학은 경기도에 있는 곳으로 갔는데, 전국체전에는 느닷없이 제주 대표로 뛰는 식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경찰은 지역 유도회와 교수, 선수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지역 유도회의 경우 전국체전에서 성적이 좋으면 지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데다, 향후 체육 예산을 확보하는 데도 유리할 수 있으며, 선수들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경기에 나가 입상을 하면 자신의 경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선수들을 출전시킬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선수들이 속한 대학의 교수들입니다. 그만큼 교수들의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고, 선수들을 출전시키는 대가로 뒷돈까지 오갔다는 게 경찰의 판단입니다.

경찰은 핵심 인물로 안병근 전 국가대표 감독을 꼽았습니다. 안병근 전 감독은 1984년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입니다. 하형주 선수와 함께 종주국 일본을 제치고 첫 유도 금메달을 일궈내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한 시대 영웅입니다. 경찰은 현직 교수인 안병근 전 감독이 선수 58명을 부정 출전시키고 그 대가로 특정 지역 유도회에서 1억 1,000만 원을 받은 혐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취재파일] 김지성 유도 부정
안 전 감독은 승부 조작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전국체전에서 자신이 교수로 있는 있는 대학의 선수들끼리 맞붙게 되자, 특정 선수를 밀어주기 위해 다른 선수에게 일부러 지도록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또, 안 전 감독이 훈련비 1억 600만 원을 횡령하고, 이른바 '까드깡'을 통해 1억 9,300만 원의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안병근 "삼겹살 한 번 회식에 300만 원"

그렇다면 안병근 전 감독의 입장은 무엇일까요? 안 전 감독은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를 기자에게 보내 왔습니다. 진술서에서 안 전 감독은 "유도만 생각하고 제자들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행한 모든 것이, 자신의 무지로 인해 체육계와 학교에 물의를 끼치게 됐다"면서 "교수이자 공인으로서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라고 밝혔습니다.

먼저, 선수 부정 출전에 대해선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고, 한 선수라도 더 출전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유도팀이 없는 시도에서 유도 선수가 많은 대학에 출전 선수를 요청한 것은 오래 전부터 이뤄진 관행이었고, 때문에 별다른 생각과 죄의식 없이 선수들을 출전시켜 왔다고 덧붙였습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안 전 감독은 특정 지역 유도회에서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다만, 전국체전 출전 선수들에 대한 훈련 지원비 명목으로 받은 것이지, 부정 선수를 출전시킨 대가로 받은 것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자신이 먼저 지역 유도회에 돈을 달라고 한 사실도 없으며, 받은 돈은 모두 선수들을 위해 사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선수들 회식비와 운동장비 구입, 등록금 지원 등에 썼다는 것입니다.

안 전 감독은 진술서에서 감독으로서의 고충도 함께 털어놓았습니다.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선수들 영양 보충을 들었습니다. 소속 대학의 유도 훈련단 선수만 100명 안팎. 일주일에 한 번씩 삼겹살이나 삼계탕을 먹여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는데, 삼겹살을 먹으면 한 번에 300만 원 이상이, 삼계탕을 먹더라도 100만 원 이상이 들어간다고 토로했습니다. 항상 쪼들려 자신의 개인 수당과 지인들로부터 받은 찬조금까지 회식비에 보탰다고 진술서에 적었습니다.

'까드깡'도 이런 고충의 연장선이었다는 게 안 전 감독의 주장입니다. 시합 출전비가 남아서 학교에 반납하면 이듬해 출전 예산이 삭감되기 때문에 자신이 대학 감독으로 오기 전부터, 부족한 회식비로 사용하기 위해 역시 관행적으로 까드깡이 이뤄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진술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해 올림픽을 출전하고 금메달을 딴 체육인이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로 끝을 맺습니다.

● 경찰 "산삼 허위 진술" vs 조인철 "보약 먹였다"
[취재파일] 김지성 유도 부정
또 한 명의 올림픽 영웅이 있습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조인철 전 감독입니다. 조 전 감독은 직전까지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다가 경찰이 구속 영장을 신청하자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경찰이 밝힌 조인철 전 감독의 혐의는 학교 공금 8,000만 원을 횡령했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조 전 감독이 횡령한 돈을 주식 투자금과 유흥비 등으로 사용하고도 증거를 위조하도록 교사했다"고 밝혔습니다. 8,000만 원으로 산삼 10뿌리를 사서 국가대표 선수 4명에게 먹였다고 진술하고, 심마니까지 동원해 산삼 구매 영수증을 위조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입니다.

조 전 감독의 해명은 조금 다릅니다. 조 전 감독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선수들에게 분명히 보약을 먹였다"고 답했습니다. "산삼 진술은 그 때 보약을 먹인 게 와전된 것"이라며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것은 경찰의 수사가 100% 다 맞지 않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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