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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의 SBS 전망대] 진도 주민 "세월호 유가족, 딸 생일에 케익 들고 찾아와. 다같이 눈물"

* 대담 :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조광원 씨

▷ 한수진/사회자: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동안 온 국민이 함께 힘든 시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누구보다 사고 현장 가까이에서 슬픔을 함께 하셨던 분들이 바로 또 전남 진도 주민 분들일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요, 진도 주민 분 한 분 연결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에 살고 계시는 조광원 씨 연결돼 있습니다. 조 선생님 나와 계세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예예.

▷ 한수진/사회자:
안녕하세요. 지금 계신 곳이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인가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예예. 그러면 사고가 난 지점과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건가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1.6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멀지 않은 거리죠? 가끔씩 또 지나치시기도 하고 보시기도 할 텐데 어떤 생각이 드세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아.. 참.. 1년 전에는 정말 너무나도 참 아비규환이었는데.. 또 세월이.. 1년이 지나다 보니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일단 그러네요. 참..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저희들 생활 터전이 바로 거기하고 가까운 데라, 가서 배를 타고 가서 보면 거기 눈이 자연히 그쪽으로 바라봐지고, 거기에 덩그러니 떠 있는 그 부표..

▷ 한수진/사회자:
부표가 있죠.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부표를 보면 너무나 가슴이 참.. 아픕니다.

▷ 한수진/사회자:
아.. 그렇군요. 조 선생님께서는 사고 나자마자 바로 달려가셔서 구조작업을 하셨던 분이시죠? 처음 사고 소식은 어떻게 접하시고 가시게 된 거예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예. 그날 16일 날 아침에 참 날씨가 너무 좋았거든요. 작업을 하던 과정에서 그 세월호가 항해하는 것을 최초 제가 봤거든요. 여객선이, 인천에서 제주 가는 여객선이 가는가보다 그렇게만 생각을 했거든요.

▷ 한수진/사회자:
그땐 잘 가고 있었어요. 예.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예. 이제 그대로 작업을 해가지고 돌아왔죠. 이제 마을로 돌아와서 있었는데 이제 서울에 있는 우리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친구가 저 병풍도 부근에서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는데 어떤 상황이냐고 그러 길래 ‘아.. 아. 아까 내가 봤던 그 배구나’ 그렇게 탁 예감이 가더라고요.

▷ 한수진/사회자:
아. 친구 분이 뉴스 보시다가 전화를 하신 거군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예. 그래서 그 소리를 듣고 이제 허겁지겁 여기저기 전화해서 배 가진 사람들한테 구조 가자고 전화를 하고 저도 배에 승선을 해서 막 가려 하는데 이장님이 마을방송을 하더라고요.
저희들이 전속력으로 현장을 돌아가니까 세월호는 누워 있고, 헬기도 와 있고, 해경 배들도 와 있고 여러 인근에 조업하던 작업선들도 와 있더라고요.

▷ 한수진/사회자:
예예. 그래서 같이 구조 활동도 하시고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예. 저희들은 당연히 해경도 있고 그래서 승객들을 전원 구했다고 생각이 들었죠. 침몰하고 난 후로 가라앉아서 한 사람도 생존자들이 없었죠.

▷ 한수진/사회자:
음.. 그렇군요. 예. 근데 그 큰 배가 그렇게 가라앉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셨으니까 얼마나 또 마음이 답답하셨겠어요. 그래서 사고 이후에 매일매일 어민들과 나가서 바다에 수색작업 참여하셨다고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예예. 그래서 지금 한이 되는 게.. 이제 저희들은 해경만 믿고 ‘다 구조를 다 하겠지, 했겠지’하고 했는데 뒤늦게 좀 거기 이제 관공서나 그런 데서 ‘저 배가 한 3백 명 있다’고, ‘못 나오고 있다’고 그 소리를 들었을 때, 하늘이 참 너무 깜깜하더라고요.
그런 줄 알았으면 저희들 배에 도끼 같은 거, 큰 쇠망치를 갖고 배에 올라가서 유리창이라도 깨고, 그 안에 있는 학생들이라도 구조를 했을 텐데 그걸 못한 것이 참 천추의.. 참 두고두고..

▷ 한수진/사회자:
참 두고두고 후회되신다..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참 제가 한이 될 것 같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지금 누구보다도 사고 이후에 진도 주민들께서도 삶이 많이 달라지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점이 좀 달라지셨을까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달라진 게 그때 당시에는 저희들이 바다가 생활 터전인데, 세월호가 그렇게 있고 난 후로 저희들은 ‘올해 1년을 못 벌어도.. 죽은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마음가짐이었죠. 처음에는.
그래갖고 이제 생업을 포기하고, 중단을 하고 구조 작업에 동참을 하고, 이렇게 자발적으로 구조 작업에 동참을 하고 했는데, 전원 생존자들은 없었고, 그래서 또 한 며칠이 지나니까 기름이 유출돼가지고 이제 저희 마을로 처음으로 전부 밀려드니까 참..

▷ 한수진/사회자:
양식장에 피해가 있었겠군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양식장뿐만 아니라 이제 전 섬에 기름이 달라붙어가지고 유류해서 방재작업을 또 했죠. 방재선장하고 같이.. 하는 도중에 이제 오일펜스라는 그걸 설치를 해놓았는데 앵커에.. 시신 하나를 건져 올렸죠. 그래서 이제 해경에 보냈는데, ‘문지성’이라는 여학생으로 판명이 됐더라고요.

▷ 한수진/사회자:
그게 며칠 만이었나요? 사고가 발생한지.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그게 한 20일쯤 됐을 거예요.

▷ 한수진/사회자:
아.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 참..

▷ 한수진/사회자:
시신이 뒤늦게 좀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이 됐었죠.
그래서 지금 주민들께서 또 걱정이 많으신 게요, 여러 가지 생계도 좀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들이 많으시다고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예예. 그렇죠. 이제 정부에서 생활지원금이라고 해가지고 85만 3천4백 원인가 일률적으로 한 번 주대요? 주고 난 후로 이제..

▷ 한수진/사회자:
더 이상 보상이 없었습니까?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예. 보상이 없고 이제 국무총리님도 오셨고, 해수부 장관님도 오셨고, 또 이제 해수부 관계 과장님들도 오셔가지고 '걱정마라. 여기는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가 됐으니까 정부에서 보상을 해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들은 이제 정부만 믿고 기다렸는데 지금까지 뭐..

▷ 한수진/사회자:
한 번 딱 80여만 원 보상금 나온 거 말고는 없었다 하는 말씀이시고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예예.

▷ 한수진/사회자:
그 이후에도 구체적인 보상책에 대해선 전혀 들으신 바가 없으시고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예. 그래서 이번에 3월 28일 날 국회에서 합의해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이 돼가지고, 시행령이 해가지고 4월 8일 날 해수부 배?보상 팀이 꾸려졌다고, 저희 조도면에 와가지고 어민들하고 설명회를 하더라고요.
9월까지는 모든 피해 배?보상이 이뤄지니까 신청을 하라고 설명회를 했는데, 22일부터 서류를 받는다는데 참 거기에.. 뭐 그것도 쉽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네. 그러네요. 참 진도 어민 여러분들, 구조 현장에서도 최선을 다해주셨고요. 그동안 어려움도 참 많으셨는데 정부가 보상에 대해서 제대로 꼭 좀 해줬으면 좋겠네요.
그런데요, 선생님. 지금 유족들도 그렇고요. 생존자들도 그렇고 여전히 고통 속에서 계시는 분들 많으신데, 조 선생님도 당시 상황이 자꾸만 많이 떠오르셔서 여전히 좀 힘들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예예. 제가 진짜 술을 전혀 못하는데, 그래서 이제 자꾸 이제 잠자리에 들면, 그런 것이 자꾸 떠오르고 해서 잠을 못 이뤄서.. 술도 한 잔 먹어버리면 이제 술에 잠을 자고 그랬는데, 사람이라는 게 또 이렇게 세월이 지나니까 좀 그런 것이.. 엊그제 유가족 엄마가.. 한 3,4일 됐나.. 케이크를 갖고 하나 우리 마을에 여객선으로 와요.

▷ 한수진/사회자:
유가족분이요?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네. 그래서 제가 염치를 무릅쓰고 ‘어머님, 어디 이렇게 오십니까.’
저한테 선뜻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재차 오시냐고 그렇게 물어보니까 세월호 유가족이라고 그러면서 오늘이 자기 딸 생일이라고 하면서 케이크를 갖고 세월호 보이는데 왔다고 그래요. 그 어머님도 우시고, 저도 눈가에 눈물이 참..

▷ 한수진/사회자:
다시 한 번 또 마음이 짠해지셨을 것 같습니다.

▶ 조광원 씨/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
네 마음이..

▷ 한수진/사회자:
예. 알겠습니다. 참 쉽게 잊힐 일은 아닐 겁니다. 특히 조 선생님은 그러실 것 같고요. 진도 주민들도 그럴 것 같습니다. 예.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주민이시죠, 조광원 씨와 말씀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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