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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추적 도피처로 활용된 '밀실'…결국엔 화근

비리 추적 도피처로 활용된 '밀실'…결국엔 화근
방산 비리의 주요 수사 대상인 이규태(66·구속) 일광공영 회장이 비밀 공간에 방대한 사업 자료를 숨긴 사실이 최근 드러나면서 과거 비리의 장본인들이 수사망을 피해 '밀실'을 운영한 사례들도 관심을 끕니다.

밀실은 비리의 당사자가 자신을 옥죄어 오는 수사 당국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조성한 공간이라는 유사점이 있습니다.

수사진을 애먹일 수 있었겠지만 들통나는 순간 범행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은 물론, 그토록 감추려 했던 비밀들을 일거에 수사진에 '헌납'한다는 점에서 자충수로 결론난다는 것도 공통적입니다.

일광공영 이 회장의 경우가 전형적입니다.

검찰은 지난 14일 1천억 원대의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납품 사기 혐의로 이 회장을 구속한 이후 수사를 마음껏 진척시키지 못했습니다.

빼돌려진 돈의 흐름을 추적하면서 이 회장의 비리 커넥션, 즉 군과 방위사업청 고위 인사들과의 유착 의혹 등으로 확대돼야 할 수사가 추가적인 물증을 찾지 못해 벽에 부딪혔던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읽은 듯, 이 회장은 구속 상태임에도 진술을 거부하는 등 검찰 조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런 태도에는 은밀한 사업 자료를 이미 빼돌려 놨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회장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 건물 안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 책장 뒤편에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밀실'을 운영했습니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라 서울 도봉산 인근 컨테이너 야적장의 1.5톤 컨테이너에 10여 년치의 사업 자료를 숨겨놨습니다.

이 회장과 일광공영은 작년 11월 군과 검찰이 합동수사단을 꾸려 방위사업 비리 수사에 착수할 때를 전후해 밀실과 컨테이너를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놓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검찰이 이 회장의 '금고지기' 역할을 했던 김 모 씨 등 2명을 추궁한 끝에 비밀 공간의 위치를 적발함으로써 이 회장을 둘러싼 비리 수사는 오히려 한층 탄력을 받게 됐습니다.

이 회장의 증거인멸 행각은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을 줍니다.

9년 전 이맘때 검찰이 총력을 기울여 수사하던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닮은 점 때문입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006년 3월 서울 양재동의 현대기아차 본사 및 계열사 압수수색 당시에도 정몽구 회장이 조성을 지시 내지 묵인한 것으로 보이는 비밀공간이 발견됐습니다.

본사가 아닌 물류계열사 글로비스에서였습니다.

당시 밀실 구조는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현대차 측은 글로비스 건물 9층 사장실과 재경팀 사이의 벽 속에서 금고가 발견됐고, 그 안에서 현금 뭉치와 양도성 예금 증서 등 80억 원대의 비자금과 각종 기밀서류가 줄줄이 나왔던 것입니다.

기막힌 수법으로 비리 단서를 숨겨놓았다는 점, 결과적으로 물증을 통째로 내줘 수사받는 입장에선 화근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이 회장의 비밀공간과 닮았습니다.

다만 현대차 사건에서는 거액의 뭉칫돈이 나왔고 공간 조성에 계열사 건물을 활용했다는 점 등이 차별점으로 꼽힙니다.

비밀공간의 '용도' 자체가 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리한 선박 운영으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과 함께 수백억 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를 받던 유병언(사망) 전 세모그룹 회장의 밀실이 해당됩니다.

작년 5월 수사당국의 압수수색으로 발견된 유 회장의 비밀공간은 전남 순천의 별장 속에 마련돼 있었습니다.

당시 수사진이 별장 거실의 벽면에 통나무로 위장된 판을 치우자 10㎡ 정도의 밀실이 드러났습니다.

입구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만들어진 이 공간은 신병 검거를 회피하기 위한 은신처 용도로 사용됐습니다.

유 회장은 이 공간에 숨어 검거망을 회피했지만 작년 7월 별장 인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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