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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 독일과 일본, 과거사를 보는 차이

과연 아베만 과거사를 부정할까?

[논설위원칼럼] 독일과 일본, 과거사를 보는 차이
메르켈 독일 총리가 어제(9일) 도쿄에서 일본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논의된 내용은 우크라이나 문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 개편 문제, 대테러 대책 등이었습니다.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금 이상한 모양이 연출됐습니다. 일본 기자가 한국, 중국과 관계개선을 위한 방법을 묻자 메르켈 총리는 머뭇거리지 않고 가해국의 과거 청산을 거론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과거의 정리가 화해를 위한 전제"라고 분명히 답했습니다. 반면 아베 총리는 독일과 국제적인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점만 강조했습니다.

정상회담 내용에 대한 관심도 달랐습니다. 독일 언론들은 후쿠시마 원전 4주년이 내일(11일)인 점을 거론하며 원전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유럽의 관심인 우크라이나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고 썼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사태, 대테러 전쟁, 유엔 안보리 개편 문제에서 협력하기로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이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보입니다. 유엔 안보리 확대 문제는 독일이나 일본 모두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들어가려는 의사를 표명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서로 뜻이 통했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나 대테러 전쟁 부분은 아마도 외교적인 수사로 마무리됐을 것입니다.

이번 방문은 독일이 오는 6월 G-7정상회의를 개최하기 전에 상대국 정상들을 1:1로 만나는 과정이기 때문에 메르켈 총리로서도 아베 총리를 굳이 자극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메르켈 총리가 묘한 행보를 했습니다. 이틀 간의 짧은 방일 기간 중 아사히 신문 본사에서 열린 강연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정상회담 직전입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FAZ)는 아사히 신문이 위안부 문제로 아베 정권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거의 ‘독일의 시간’ 같았다고 FAZ는 표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메르켈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하지 못할 말을 쏟아냈습니다. 첫 질문이 “독일이 과거사를 대한 데에서 일본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였습니다. “그 문제는 사회(의 합의)에서 나와야 한다“고 외교적 수사를 달았지만 뜻은 분명했습니다. 독일이 프랑스 같은 전쟁 당시의 적국과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이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독일에게는 그렇게 할 커다란 의지가 ‘분명히‘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단, 이 말을 되풀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열린 정상회담에서 메르켈 총리는 “나는 일본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충고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 아베 총리를 안심시켰습니다.
[취재파일] 메르켈
이런 메르켈 총리의 발언을 양국 언론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면 흥미롭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주로 정상회담 내용 부분을 기사로 썼습니다. 아사히 신문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역사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보수적인 요미우리 신문은 유엔 안보리 문제와 G-7 정상회의 협력 문제, 우크라이나 문제를 주로 논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진보 신문인 마이니치 신문은 원전 문제에서 약간 의견차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아사히 신문 만이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아사히 신문은 “과거 총괄, 화해의 전제”라는 제목으로 1면에 기사를 실었습니다. 물론 언론의 속성상 타사가 주관한 행사를 집중 보도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메르켈의 방일 의미가 상당 부분 종전 70년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의 다른 언론들의 반응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반면 독일 언론들은 적극적으로 과거사 문제를 보도했습니다. 디 벨트지도 일본의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최근의 기류를 거론하면서 메르켈 총리가 아사히 신문사에서 강연한 것을 주목했습니다. FAZ는 아예 현지 특파원의 기사를 통해 메르켈 발언의 행간을 읽으라고 썼습니다. 독일 언론은 아니지만 AFP 통신도 메르켈 총리가 아사히 신문 강연에서 먼저 독일이 과거사를 직시한 데서 2차 대전의 끔찍한 경험 뒤에도 국제 사회가 독일을 받아들여 주었다면서 이는 독일의 행운이었다는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또 이를 바탕으로 당시 가장 큰 사건은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였다는 점을 메르켈 총리가 지적했다고 AFP는 전했습니다.
그래픽_독일메르켈총
메르켈 총리는 취임 이후 그야 말로 틈만 나면 과거사를 반성했습니다. 2007년에는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직접 찾아 유대인 희생자들에게 고개를 숙였고, 2013년 8월 독일 내 다하우 수용소를 독일 총리로서는 처음 찾아 사죄하기도 했습니다. 올 들어서도 1월 26일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주년 하루 전날 베를린에서 기념식을 갖고 “독일은 수백만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바로 어제 한 자리에서 극명하게 노출된 것입니다. 과거사를 부정하고, 그나마 나왔던 과거사에 대한 표현까지 수정하려는 일본, 끊임없이 과거사를 반성하고 잘못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독일, 과연 세계는 어느 나라를 신뢰할까요? 일본은 독일의 사례를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독일의 반성, 그리고 이웃의 용서, 이런 상황의 연장이 오늘날 유럽연합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동북아의 지역적 안정을 바라고 나아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일본, 당장 이웃인 한국과 중국도 설득하지 못한다면 세계 평화에 기여는커녕, 지역적 불안을 야기하는 존재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인식은 그래도 안이하기만 합니다. 기시다 외무장관은 일본과 독일의 전후 처리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당하다고 주장했고, 스가 관방장관은 메르켈 총리의 화해 언급이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면서 정상회담에서는 역사에 대한 대화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인기 논설위원 대
그렇지만 메르켈 총리는 오카다 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도 종전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중국, 한국과 화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오카다 대표가 언급한 데 대해 “자신의 문제로서 과거와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항상 과거와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메르켈 총리 스스로가 방일 기간 중 과거사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언급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과거사 문제가 한일 사이에 쟁점이 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것은 단순히 아베 정권의 폭주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이번 메르켈 총리의 방일을 통해 확인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메르켈 총리는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바로 “그 문제는 사회(의 합의)에서 나와야 한다“는 발언입니다. 이번 방일을 보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 태도는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우경화 분위기 속에 아베 정권이 앞장서서 분위기를 끌어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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