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총선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번 그리스 총선은 유럽에서 가장 혹독하게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점, 그 결과에 따라서는 유럽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칼럼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지만 이른바 트로이카(EU, ECB, IMF)가 그리스인들을 파국으로 몰고 있다고 그리스 국민들은 판단했습니다. 마치 외환위기 당시 우리 국민들에게 IMF가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됐듯이 지금 그리스 국민들에게는 트로이카의 존재가 그렇습니다. 2010년 구제금융을 받은 뒤 혹독한 긴축이 이어졌고, 국민들의 고통은 심해졌습니다. 실업률이 25%에 이르고, 특히 청년 실업률은 50%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고통스러운 긴축을 끝내자‘라는 메시지를 앞세운 시리자에 대한 지지는 당연한 귀결일 지도 모릅니다. 이번 총선을 실시하기 전 2014년 12월 말 대통령 선거 당시 시리자는 24.2%의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이후에도 지지율이 계속 오르면서 2015년 1월 19일 여론조사에서는 33.5%로 뛰더니 1월 25일 총선 결과는 36.4%의 지지였습니다. 불과 한 달 새 지지율이 12.2% 포인트나 치솟은 것입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스페인의 일간지 엘디아리오는 ’시리자의 정치적 실험실’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추이를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치프라스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선거 공약대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공공부문 민영화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곧바로 EU에 채무탕감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트로이카의 최대 주주라 할 수 있는 독일의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유럽의회의 연설에서 트로이카의 역할이 긍정적이며, 재협상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습니다. 당분간 그리스와 독일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치프라스 정권은 심지어 독일의 과거사를 언급하기도 하고, EU의 러시아 추가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전방위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채무규모가 워낙 커서 이런 압박이 먹혀들 수도 있습니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그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그 후폭풍은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의 요구를 트로이카가 받아들인다면 이런 요구가 그리스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유럽의 엘리트들이 극좌파의 점증되는 힘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썼습니다. 당장 스페인의 좌파 정당 포데모스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금융위기 당시 구제 금융을 받았던 나라들이 주로 남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인 데, 그리스를 필두로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 규모가 워낙 커서 이 국가에서 문제가 생기면 전 유럽이 휘청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은 12월 20일 총선이 예정돼 있습니다. 창당한 지 1년 밖에 안 되는 포데모스가 지지율 1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 한 차례 유럽에 쇼크를 줄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도 9월에 선거가 예정돼 있는 등 올 하반기 남유럽 정치 지형이 요동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의 치프라스 정권이 과연 어디 까지 트로이카를 밀어붙일 지, 트로이카는 또 이 요구를 어떻게 방어할 지, 단순히 그렉시트를 막기 위한 방책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로존, 나아가 유럽연합 전체를 두고 고민이 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