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논설위원칼럼] 그리스 쇼크? 하반기가 더 문제

[논설위원칼럼] 그리스 쇼크? 하반기가 더 문제
1월 27일 유럽연합(EU)는 독특한 형식의 문건을 내놨습니다. EU는 매일 여러 건의 뉴스브리핑을 내놓는 데, 이 문건의 형식은 ‘기사’였습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을 비롯해 여러 명의 유럽의회 의원들을 인터뷰한 ‘기사’입니다. 제목은 ‘마르틴 슐츠: “우리는 그리스와 EU를 안정시키기 위한 합의에 들러붙어야 한다”였습니다. EU는 흔히 회원국 개별 사정에 대해서는 논평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 그리스 총선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의회 의원들 인터뷰 형식으로 총선 결과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유로존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조제 페르난데스 포르투갈 의원)“옳은 방향은 유럽의 경제정책이 함께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지안니 피텔라 이탈리아 의원)“만일 당신이 클럽의 일원이라면 당신은 규칙에 부응해야 한다”(마크 데메스메커 벨기에 의원)“(이번 총선은) 시리자와 좌파, 그리스 국민들의 승리이면서 실업과 극빈, 가난을 몰고 온 정치의 패배이다”(마리나 구스만 스페인 의원)

한 나라의 총선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번 그리스 총선은 유럽에서 가장 혹독하게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점, 그 결과에 따라서는 유럽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칼럼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지만 이른바 트로이카(EU, ECB, IMF)가 그리스인들을 파국으로 몰고 있다고 그리스 국민들은 판단했습니다. 마치 외환위기 당시 우리 국민들에게 IMF가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됐듯이 지금 그리스 국민들에게는 트로이카의 존재가 그렇습니다. 2010년 구제금융을 받은 뒤 혹독한 긴축이 이어졌고, 국민들의 고통은 심해졌습니다. 실업률이 25%에 이르고, 특히 청년 실업률은 50%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고통스러운 긴축을 끝내자‘라는 메시지를 앞세운 시리자에 대한 지지는 당연한 귀결일 지도 모릅니다. 이번 총선을 실시하기 전 2014년 12월 말 대통령 선거 당시 시리자는 24.2%의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이후에도 지지율이 계속 오르면서 2015년 1월 19일 여론조사에서는 33.5%로 뛰더니 1월 25일 총선 결과는 36.4%의 지지였습니다. 불과 한 달 새 지지율이 12.2% 포인트나 치솟은 것입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스페인의 일간지 엘디아리오는 ’시리자의 정치적 실험실’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추이를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치프라스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선거 공약대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공공부문 민영화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곧바로 EU에 채무탕감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트로이카의 최대 주주라 할 수 있는 독일의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유럽의회의 연설에서 트로이카의 역할이 긍정적이며, 재협상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습니다. 당분간 그리스와 독일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치프라스 정권은 심지어 독일의 과거사를 언급하기도 하고, EU의 러시아 추가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전방위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채무규모가 워낙 커서 이런 압박이 먹혀들 수도 있습니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그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그 후폭풍은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의 요구를 트로이카가 받아들인다면 이런 요구가 그리스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유럽의 엘리트들이 극좌파의 점증되는 힘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썼습니다. 당장 스페인의 좌파 정당 포데모스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금융위기 당시 구제 금융을 받았던 나라들이 주로 남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인 데, 그리스를 필두로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 규모가 워낙 커서 이 국가에서 문제가 생기면 전 유럽이 휘청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은 12월 20일 총선이 예정돼 있습니다. 창당한 지 1년 밖에 안 되는 포데모스가 지지율 1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 한 차례 유럽에 쇼크를 줄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도 9월에 선거가 예정돼 있는 등 올 하반기 남유럽 정치 지형이 요동칠 수 있습니다.

김인기 논설위원 대
유로존을 사실상 이끌어가는 독일이 완강하던 태도를 누그러뜨려 양적완화를 하기로 한 것도 회원국들의 요구를 원칙만 내세워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결과로 보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만큼이나 실업률이 높은 스페인에서도 긴축에서 벗어나자는 호소를 바탕으로 좌파 정당이 집권한다면 유로존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번 그리스 총선에서도 ‘황금새벽당’이 살아남았듯이 극우정당들 까지 난립하면 유럽연합 자체가 무의미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의 치프라스 정권이 과연 어디 까지 트로이카를 밀어붙일 지, 트로이카는 또 이 요구를 어떻게 방어할 지, 단순히 그렉시트를 막기 위한 방책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로존, 나아가 유럽연합 전체를 두고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