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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엇이 엘리트 가장을 가족살해범으로 내몰았나?

[취재파일] 무엇이 엘리트 가장을 가족살해범으로 내몰았나?
1월 6일 새해벽두부터 서울 서초동 엘리트 가장의 일가족 살해라는 무참한 사건에 국민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좋은 대학 출신에 값비싼 아파트, 그리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던 40대 가장이 왜 이런 참혹한 짓을 저질렀을까?

경찰에 붙잡힌 강 모 씨는 쏟아지는 기자들의 살해 동기 질문에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마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살해 동기가 '생활고' 때문이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현재 경제 상태가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공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 가장

67년생인 강씨는 서울 최고의 명문 사립대 경영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국내 최대연봉을 자랑하는 대기업에 취업했고, IT 붐을 타고 외국계 컴퓨터 부품업체의 임원으로 이직했습니다. 이어 한의원과 화장품 업체 등으로 옮겨 임원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주특기는 회계와 인사였습니다.

2004년 서초동의 44평형 아파트를 9억원에 샀습니다. 학군이 좋아 특히 인기가 높은 아파트였습니다. 아파트 경기가 나빠진 지금도 급매가가 12억원 수준입니다.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녔고, 두 딸과 아무 문제없이 살아 왔습니다.

● 실직과 찾아온 '불안'

2012년 11월 회사에서 퇴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스팩이면 재취업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퇴직 한달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파트를 담보로 5억 원을 대출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실직 상태일 때보다 좋은 조건일 때 대출받는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3년동안 이자만 내다가 2015년 10월부터 원금까지 갚는 조건이었습니다.

딸들에겐 아빠가 실직자로 보이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 고시원에 등록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고시원에 나가선 이곳 저곳에 재취업 원서를 냈습니다. 경력을 인정받길 원했습니다. 걸맞는 직위와 안정적인 연봉을 원했습니다. 그러나…10여 군데에 낸 원서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급했습니다.

부인에겐 생활비 조로 매달 400만 원씩 줬습니다. 대출금 까먹는게 아까워서 주식에 손을 댔습니다. 그러나 만만한 건 없었습니다. 2년 새 2억 7천만 원을 까먹었습니다. 생활비로 1억 원을 쓴 것까지 합하면 남은 돈은 1억 3천만 원 뿐이었습니다.

● 범행의 직접적 동기는?
모녀 살해 가장 캡
지난 연말 강 씨는 '이젠 끝'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취재결과 12월 30일부로 고시원을 나왔습니다. 이 날은 중학생인 딸의 방학식 날이었습니다. 바로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온 가족을 승용차에 태우고 그가 도착한 곳은 대청호.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최후'를 실행하려 했지만 차 뒤에서 놀고 있는 딸들을 보고 포기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습니다. 차마…죽일 수 없었다고.

1월 초, 연휴기간동안 집에서만 있다보니 갑갑했을 겁니다. 그런데 범행 하루 전인 5일 저녁에 부인이 새해 계획을 이야기하며 '대출금'문제를 꺼내 들었습니다. 부인은 올 10월부터 원금까지 갚아야 하는데, 여유가 있을 때 아예 다 갚아버리자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통장에 현금 3억 원이 있으니 생활비 걱정은 당분간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식투자 실패 사실을 부인이 몰랐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대출금으로 주식투자를 하다가 2억 7천만 원을 까먹은 사실을 부인이 몰랐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오히려 주식투자에 성공해 생활비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완벽한 엘리트 가장의 모습을 지키고 싶었는데 '실패한 가장'의 모습을 보이게 된 게 부담이었다고 경찰에게 털어놨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면증 치료를 위해 처방받은 수면제를 와인에 타서 부인에게 먹였습니다.
그리고는…차례차례…범행을 저질렀습니다.

● 강 씨의 남은 재산은?

취재결과 강 씨가 살고 있는 서초동 44평형 아파트는 급매가가 12억 원 정도로 형성돼 있습니다. 근처 학군이 워낙 인기가 높아 아무리 값이 떨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집을 팔아 대출금을 갚으면 7억 원이 남습니다. 여기에 대출금 잔금 1억 3천만 원을 더하면 8억 3천만 원이 남습니다.

부인 통장에는 3억 원이 예금돼 있었습니다. 부부 모두 유복한 가정 출신인데다 대출금 이외의 빚은 없었습니다. 대략 재산이 11억 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범행의 이유는 경제적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심리적 문제였던 겁니다.

● 미래에 대한 불안감…"회복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경찰 조사를 받던 강씨는 살해 동기를 묻는 경찰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형사님, 우리가 보통 몇살까지 살까요? 80살 까지는 살겠죠?"

강 씨는 앞으로 남은 30년동안 지금 이 상태보다 더 상황이 나빠질 것을 걱정했습니다. 지금까지의 탄탄대로의 삶으로의 복귀는 불가능할 것으로 봤습니다. 패배감이었습니다. 2년의 실직생활 속에 '재취업 불가' 내지는 '전의 삶으로의 복귀 불가'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극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한 겁니다.

이런 심리는 연예인의 자살 사건에서도 자주 지적됩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수과 연예인들이 우리가 볼 때는 일반 서민들보다 괜찮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인기가 좀 떨어지면)자살을 선택하거나 공황장애를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누려왔던 그 수준으로 다시는 회복할 수 없고, 나는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건 지옥과 같은 고통이거든요"

남궁 기 세브란스 정신과 교수도 비슷한 진단을 했습니다.

"나는 이제 미래도 없고 현재도 없고 앞으로도 안될거고…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그 상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잘못된 결정일 가능성이 큰 겁니다"

● 왜 '동반자살'을 택했나

많은 시민들이 인터뷰에서 강 씨를 책망하며 내놓은 말입니다. 

"죽으려면 혼자 죽지,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나쁜 사람이에요."

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가족들을 먼저 살해한 이유에 대해 자신이 자살하면 딸들에게 충격이 클 것을 우려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살자, 실패자의 딸'이라는 사회적 냉대와 시선을 받을 것이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차라리 함께 죽는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는 겁니다.

가장 중심의 가부장적인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족관이 극단적으로 해석된 결과입니다. 책임감 많은 가장일수록 어려운 시기를 맞으면 '나 없으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사냐'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데 우려점이 있습니다.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의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가장이나 집안의 양 부모가 경제적 어려움, 감정적 어려움을 겪었을 때 아이들을 자신의 부속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을 하는거죠. 특히 동반자살은 화목한 가정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이를 부모를 사랑하고 따르고 유달리 가족관계가 좋은 가정에서 부모가 어려움을 겪을 때 다 함께 죽고 다 같이 하늘에서 만나자는 개념이 있어요. 이게 가족살해 후 자살로 이어지는 겁니다."

강 씨처럼, 남겨진 가족을 위한다는 마음에 그들의 선택을 무시하고 벌이는 참극.
이건 분명 '타살'입니다.

● 왜 자신만 살아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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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사실 중 하나가 '왜 강씨는 가족들을 모두 살해하고 혼자 살아남았는가' 일 겁니다. 경찰 조사에서 강 씨는 가족들을 살해하고 뒤따라 자살을 할 생각을 했지만 집에서는 차마 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서며 119에 신고를 하고 무작정 죽으려고 나갔다고 진술했습니다. 대청호에 가서 물에 들어갔지만 겨울외투의 부력 때문에 자꾸 떠올라 포기했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그는 변호인 선임도 거부했습니다. 가족 면회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모든 범죄사실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간 가족들에게는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벌인 참극은 어쩔 수 없었고, 아직도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 잘못된 가족관…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 못하는 사회의 책임

이번 참극을 취재하며 나름대로 두 가지로 원인을 정리해 봤습니다.

우선 잘못된 가부장제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극단적으로 강요된 '가장의 책임'입니다. 아버지, 가장은 가정에서 중요한 기둥이고 큰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이 가장의 소유물은 아닙니다. 모두가 인격체입니다. '나 없으면 어떻게 살지~' 이런 걱정까지 하는 건 좋습니다. 개선책을 찾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극단적 선택은 안 됩니다. 가족끼리 마음을 열고 소통을 하는게 중요합니다. 남들도 아는 것을 왜 가족은 몰라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소통하는 가족문화가 절실합니다. 어려우면 외부 상담이라도 함께 받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사회의 안전망 부재입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의 간단히 정리입니다.

"사회적으로 우리는 한번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잖아요. 그런 시스템이 없다시피 하잖아요."

40대 후반 가장들에게 이번 사건이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참극으로 돌리지 말고, 인식을 되짚어보고 현실을 공감하며 가족들과 소통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요? 위에 계신 분들도 단순히 '안타까운 사건'으로 밀어버리지 말고 사회 시스템을 정비해 보는 데 힘을 실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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