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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도 안오는 대리운전기사들…특정지역 운행 기피

목적지 공개 이후 심해져…관련법 없어 지도·단속 못해

불러도 안오는 대리운전기사들…특정지역 운행 기피
최근 부산에서는 특정지역에 대한 대리운전을 꺼리는 사례가 많아 소비자 불만이 늘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10시 동구 초량동에서 지인과 술자리를 가졌던 안모(51·자영업)씨는 모 대리운전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확인한 업체 직원은 '기사가 도착할 때까지 10분 정도 걸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40분이 넘어도 대리기사는 배정되지 않았다.

'술자리가 많은 연말이라 이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안씨는 다른 업체에 전화를 걸어 대리운전을 요청했고, 또 40여 분을 기다린 끝에 집인 남구 용호동 모 아파트로 갈 수 있었다.

근데 집으로 향하던 도중 안씨는 기사로부터 "밤늦게 그 아파트라고 목적지를 말하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 목적지를 광안리라고 말하고, 기사가 오면 요금을 더 주든지 협상을 해서 용호동으로 가자'고 하면 된다"라는 뜻밖의 밖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도심에서 살다가 다소 외진 용호동으로 이사한 지 2개월 정도된 안씨는 그동안 대리운전이 잘 안 된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지난 27일 오후 11시 신모(51·회사원)씨는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해운대구 좌동 집까지 대리운전을 모 업체에 신청했다.

대리기사가 오는 사이 신씨는 친구로부터 '해운대구 재송동에 동기 모임을 하고 있다.

잠시 얼굴만 보자'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10여 분 뒤 도착한 기사에게 '재송동으로 가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기사는 '다시 신청하라'며 그냥 가버렸다.

신씨는 이후 30여 분간 자신을 재송동까지 데려다 줄 대리운전기사를 찾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차를 도로변에 세워둔 채 택시를 타야 했다.

문제는 안씨 등과 같은 사례가 지난 8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부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모 대리운전업체의 '대리운전기사에 대한 목적지 미제공'이 '불공정행위'라고 결정한 이후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리운전업체가 목적지가 표시되지 않은 콜 정보를 기사에게 제공한 뒤 목적지를 확인한 기사가 마음대로 배차를 취소하면 불이익(1∼3일 배차 정지 등)을 주는 것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 1항(거래상지위남용행위) 위반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저히 '을'의 위치에 놓인 대리운전기사의 권익 보호 차원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지만, 안씨 등과 같은 사례처럼 예기치 못한 문제점을 낳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은 대리운전기사, 대리운전업체 등 업계 내에서도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리운전을 마친 뒤 그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콜이 없는 경우 금전적, 시간적 손해를 고스란히 자신이 감수해야 했던 대리기사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목적지 공개' 결정을 환영했다.

하지만, 이후 소위 '특정 선호지역'에 기사들이 몰리면서 종종 콜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자 일부 기사들 사이에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대리운전기사 장모(58)씨는 29일 "대리기사 수가 많아진 상황에서 모두가 목적지를 골라서 일을 하다 보니 콜 받기도 쉽지 않고, 수입도 예전만 못하다"고 불평했다.

대리운전업체도 고충이 많다.

모 대리운전업체 오모(52) 본부장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서비스가 나빠졌다'는 것"이라며 "완료율(대리운전 신청자와 기사 연결 성공률)이 떨어지고, 배차 지연에 따른 취소율도 덩달아 증가하면서 고객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

대리운전업계에 따르면 완료율이 낮은 기피지역은 남구 용호동, 해운대구 재송동을 비롯해 사하구 감천·구평·다대·장림동, 해운대구 반여동, 부산진구 개금동, 동구 수정동, 금정구 서동 등이다.

대부분 공단지역이거나 다소 외진 곳 또는 대중교통이 불편한 산복도로 주변 지역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목적지 공개'의 부작용을 개선할 묘수가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대리운전업계는 사실 '법의 사각시대'에 놓여 있다.

대리운전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하나로 자리했지만 관련 법이 없다.

누구나 사업자가 될 수 있고, 초보운전자도 대리기사가 될 수 있다.

대리운전을 양성화하기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국회에서 일부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수년째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부산시의 한 관계자는 "요즘 콜 기피, 웃돈 요구 등 대리운전 관련 민원을 제기하는 시민이 많다"며 "하지만 지도·단속을 할 수 있는 법도 없고, 대리운전업계 관련 업무를 맡은 부서도 없어 그냥 지켜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리운전업계가 제대로 된 서비스 업계가 되려면 관련 법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리운전업계에 따르면 현재 부산지역 대리운전업체들 가운데 제법 규모가 큰 업체는 10여 곳 정도 되며, 규모가 작은 업체까지 합치면 수백 곳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리운전기사는 대략 7천명 정도로 추산되며, 하루 이용객은 울산과 경남을 합쳐 7만∼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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