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액수의 돈이 사라진 어제 사태는 사실 단순한 사건이 부른 오해가 빚어냈습니다. 작년 10월까지 7년 동안 하청업체들이 너트, 조임쇠, 와셔 등 11개 부품의 성적서를 위변조해 현대로템에 공급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현대로템이 아니라 바로 이 하청업체들의 성적서 조작으로 현대로템에 과징금 수천억 원이 부과될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 주가가 자유 낙하한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과징금 수천억 원 안됩니다. 수억 원도 될까 말까입니다.
성적서를 제대로 만들어 11개 품목을 공급했을 때의 가격은 760만 원입니다. 760만 원짜리 부품들로 얽힌 오해가 와전됐고 또 현대로템이 요즘 동네북이 돼버린 방산 기업이다 보니 투자자들이 속절없이 등을 돌린 것입니다. 760만 원이 1317억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 기괴한 사건은 무기와 관련된 작은 잘못도 방산 비리로 엮는 요즘 분위기가 빚어낸 참극입니다.
● 현대로템, 과징금 최대 3천억 폭탄?
그제 방사청은 가격심의위원회를 열었습니다. 사고 방산 업체에 대해 적게는 과징금, 크게는 부정당 업체 지정이라는 징계 부과를 심의하는 회의입니다. 부정당 업체로 지정되면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방산 업체들은 영업정지나 다름 없는 타격을 받습니다. 그에 비해 과징금은 체급이 훨씬 빠지는 경징계입니다.
그제 가격심의회에는 현대로템을 비롯한 13개 대형 방산 업체들이 심의 대상에 올랐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이 지난 2007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241개 업체가 부품의 성적서 2천749건을 위변조한 것을 적발했고, 그 업체들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은 곳이 현대로템 등 13개 대형 방산 기업입니다. 대형 방산 기업들은 하청업체들의 성적서 위변조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방사청이 제재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제 방사청의 심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1개 업체는 부정당 업체 지정 조치를 받았고 11개 업체는 과징금, 1개 업체는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부정당 업체 지정, 즉 영업 정지 처분을 받은 업체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현대로템 등 11개 업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적게는 몇 천 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 정도의 과징금이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관련 법은 위변조한 성적서를 제출한 업체에게는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업비의 4.5%~9%입니다. 성적서를 조작해 제출한 업체는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이고 사업비는 760만 원입니다. 법을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과징금 규모는 3천억 원이 아니라 34만~68만 원입니다. 법을 확대해석해서 하청업체들의 위변조 성적서를 받아서 제출한 현대로템에게까지 과징금을 물린다고 해도 관리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몇 푼 안됩니다. 68만 원의 1백 배라고 해도 6천8백만 원이고, 1천 배를 하면 6억 8천만 원입니다. 과징금 액수 결정은 기획재정부에서 할텐데 과징금은 아마 이 수준 밑에서 형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방사청은 서둘러 “수천억 과징금은 없다”는 입장자료를 내기도 했습니다.
● 버림 받은 방산…삼성처럼 매각만이 살 길?
이런 풍토에서 기업들은 구태여 무기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삼성은 전자와 IT 전문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과 집중이라며 삼성 테크윈과 삼성 탈레스를 버렸습니다. 사실 선택과 집중을 말하려면 전자, IT와는 전혀 관계 없는 놀이공원과 호텔, 생명보험을 매각했어야지요. 다른 대기업들도 삼성과 같은 셈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