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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분산개최 논란 강원도의 자업자득

[취재파일] 분산개최 논란 강원도의 자업자득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일부 종목의 분산 개최를 제안하면서 그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IOC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상당히 정교한 시나리오를 준비한 뒤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분산 개최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했고 구닐라 린드베리 평창 동계올림픽 조정위원장은 구체적 안까지 제시했습니다. 분산 개최 종목을 썰매 종목으로 지정하고 평창 조직위원회가 내년 3월까지 결정하라는 시한까지 정했습니다.

분산 개최할 수 있는 다른 나라 썰매 경기장 12개의 리스트도 조만간 보낼 방침입니다. 체육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런 분산 개최 안이 평창조직위원회에 전달된 게 지난 11월초 태국 방콕에서 열린 ANOC(국가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 총회 기간이라고 합니다. 당시 조양호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 대표단을 이끌고 현지에서 평창 올림픽 준비 상황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가졌습니다. 이 총회에는 바흐 위원장과, 린드베리 조정위원장이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IOC의 의사를 전했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바흐 위원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어젠다 2020'은 이름 그대로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부터 적용될 예정이었습니다. 세부 프로그램 항목 수를 20+20=40개로 만든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당초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IOC는 왜 방침을 바꿔 평창 올림픽 일부 종목의 분산 개최를 제의했을까요?       

1. IOC의 신뢰를 잃었다

강원도 평창이 지난 2011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IOC와 국제사회에 한 약속이 있습니다. 이후 3년 동안 바흐 위원장과 린드베리 위원장은 수차례 평창을 방문해 올림픽 준비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이 제대로 지켜진 게 없었습니다. 이들이 올때마다 경기장, 선수촌 등 관련 시설물을 '언제'까지 짓는다는 말만 했지 그 '언제'에 다시 와도 실제 진행된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평창조직위는 여러가지 핑계를 대기에 바빴습니다. 강원도 평창은 쉽게 말해 IOC의 눈에서 보면 '양치기 소년'이 되고 있었던 겁니다. 급기야 지난 7월초 평창에서 열린 '디브리핑' 행사 때 IOC는 평창조직위에 경고 사인을 보냈습니다. 김진선 당시 조직위원장이 '비상 사태'라 표현할만큼 시간적으로 쫓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주 뒤 김 위원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전격 경질되면서 또 몇 달을 허송세월하고 말았습니다.      
   
2. 지긋지긋한 '한 지붕 세 가족' 싸움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의 3축은 정부, 강원도, 평창 조직위원회입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를 대표해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문순 강원도지사, 조양호 평창 조직위원장이 지난 10월초 만나 경기장 건설 등 주요 현안에 대해 합의를 마쳤습니다. 우여곡절끝에 빙상 4개 경기장의 착공에 들어갔지만 정부가 요구한 건설비 삭감(약 700억원)을 놓고 강원도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개폐회식장 건설비 부담 문제까지 불거져 또다시 혼선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3. 도지사 약속을 뒤집은 도의회 
개폐회식장 건설비를 누가 얼마나 내야 하는지를 놓고 또 천금같은 시간을 보내다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마침내 어렵게 결단을 내렸습니다. 강원도가 총 건설비 1,300억원의 25%를 부담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나머지 50%는 정부가, 25%는 조직위가 부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런데 강원도의회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가뜩이나 재정 사정이 어려운데 25% 부담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올림픽 예산 심의 거부는 물론 올림픽 반납까지 고려하겠다며 반발했습니다. 지난 2일에는 정부가 75%를 지원해야 한다며 빙상경기장 사업비 가운데 지방비 부담액 약 352억원 전액을 삭감해 예비비로 돌리며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도지사가 합의한 사항을 도의회가 정면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개폐회식장 설계는 공정상 이달말까지 설계에 들어가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픽_IOC 토마
4. 바흐 위원장의 개인적 감정

강원도 평창이 2011년 남아공 IOC 총회에서 개최권을 따낼 때 가장 강력한 경쟁 도시는 독일의 뮌헨이었습니다. 독일 사람인 바흐 위원장은 당시 IOC 부위원장이자 '넘버2'라는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뮌헨의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평창의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뮌헨의 참패. 차기 IOC위원장을 눈앞에 뒀던 바흐의 자존심과 체면도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평창 대표단이 만세를 부르는 동안 바흐는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수백명의 사람을 제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바흐 위원장을 속된 말로 또 열 받게 만든 일은 '디브리핑' 행사 때 일어났습니다. '올림픽역' 설치를 놓고 인근 주민들이 행사장 주변에서 격렬한 항의를 벌였습니다.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분뇨차'까지 동원했다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또 행사가 열린 평창 컨벤션센터 정문에는 김연아 선수의 소치 동계올림픽 판정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각종 피켓을 들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푸틴 대통령-친콴타 국제빙상연맹회장이 나란히 웃고 있는 사진 밑에 바흐 위원장의 사진을 배치했습니다. 

문구는 'Dirty sochi scandal' 'Restore the olympism'(더러운 소치 추문, 올림픽 정신을 회복하라)이었습니다. 김연아의 편파 판정 논란과 바흐 위원장은 사실 상관이 거의 없습니다. 바흐가 이 피켓을 보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사태들은 바흐 위원장을 비롯한 IOC 고위 관계자에게 모두 전달됐고 평창 조직위 직원들은 식은 땀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맹자는 '인필자모연후 인모지'(人必自侮然後 人侮之) 즉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를 업신여긴 연후에 남이 나를 업신여긴다고 했습니다. 바흐 위원장의 분산 개최 제안은 강원도 평창에게는 심하게 말하면 망신스러운 일입니다. 당초 약속한 대로 경기장을 비롯한 제반 시설을 제 때에 짓고 정부-강원도-조직위가 불협화음을 연출하지 않았다더라면 이런 사태는 아예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바흐의 메시지를 쉽게 요약하면 "돈이 없으면 다른 나라에 종목을 줘서라도 올림픽을 치러야 한다. 이게 싫으면 빨리 지어라"는 것입니다. 강원도는 IOC의 분산 개최 제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강행할 경우 올림픽 반납까지 불사한다는 각오입니다. 하지만 흥분보다는 사태가 왜 지경까지 왔는지 냉정히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강원도입니다. 올림픽을 치를 권리도,의무도 강원도에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어버리는 '소탐대실'의 잘못을 범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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