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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로야구 PS 입장권은 왜 구하기가 어려울까?

[취재파일] 프로야구 PS 입장권은 왜 구하기가 어려울까?
취재는 늦은 밤 걸려온 한 통의 제보 전화에서 시작됐습니다.
 
[제보자]
“000(경찰 정보원)에게서 기자님 소개받았습니다. 기자님도 야구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입장권 예매가 왜 어려운지 아세요? 고발성 기사 자주 쓰신다면서요. 분명 쉽지는 않습니다. 쉬웠으면 벌써 기사가 나왔겠죠. 그래도 한 번 제대로 파헤쳐 보세요.”

 
자신을 전직 티켓판매 대행업체 직원이라고 소개한 제보자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취기에 하는 얘기라고 넘기엔 설명하기 어려운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제보자]
“제가 취해서 횡설수설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게 넘기지는 마시고 잘 한번 알아보세요. 일반 관중이 그렇게 구하기 어려운 포스트 시즌 입장권을 암표상들은 어떻게 수십 장씩 들고 다니며 장사할까요?”

 
제보자가 던진 질문, ‘암표상들은 그렇게 많은 표를 어디서 구했을까?’ 저 개인적으로도 암표상 관련 취재를 할 때마다 가졌던 궁금증이기도 했습니다. ‘일반인들은 예매는커녕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기도 어려운데, 저 암표상들은 어떻게 입장권을 수십 장에서 100여 장씩 들고 다닐까?’ 취재는 이렇게 개인적인 궁금증에서 시작됐습니다.
 
사흘 동안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전직 암표상 한 명을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운수업 관련 일을 한다는 그는 일이 늦게 끝난다며 자정 무렵 서울 강남 모처에서 만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전직 암표상 1]
“우리(암표상)가 인터넷 사이트를 독점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매번 인터넷에서 표를 수십 장씩 구할 수 있겠어요? 한 명당 최대 4장씩 밖에 못 사는 걸로 아는데, 그게 가능하겠어요? 솔직히 난 늙어서 인터넷도 잘 못해요. 결국, 우리한테 입장권을 공급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보는 게 상식 아니겠어요?”

 
취재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암표상은 입장권을 자유롭게 관리하는 건 말단 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어떤 방식으로든 고위 관계자가 관여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습니다.
 
[전직 암표상 2]
“어떤 고위 관계자가 야구장에 직접 나와서 별도로 매표소 안에 개인 사무실을 만들어 놓고, 발권기까지 설치해서 소위 말하는 ‘입장권 놀이’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장사를 한두 해 해온 게 아닙니다. 프로야구 시즌 끝나면 진급하고, 차도 값비싼 고급 차량으로 바꾸고, 집에 걸린 TV가 바뀌고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잘 찾아보세요.”

 
제가 아는 취재원은 물론 관련 업계 종사자 등을 상대로 다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앞서 얘기한 3가지 조건에 들어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프로야구 입장권 판매 대행업체에 서버를 제공하는 T사의 고위 관계자였습니다. 다시 T사 전·현직 관계자, 프로야구 관계자 등 십여 명을 상대로 그 관계자에 대해 취재해 보았습니다.
 
이들의 얘기를 종합해 볼 때, 그 고위 관계자가 입장권을 미리 빼돌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제보자들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담당 고위 관계자가 '포스트 시즌 경기의 좌석을 본인이 직접 관리하면서 인터넷 예매가 시작되기 전에 입장권을 미리 구매한다. 그리고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에는 구단이 요청한 좌석이다, 구단에는 KBO에 줘야 할 좌석이라고 말한 뒤 빼돌린 표를 자신이 가로챘다. 또, 이렇게 빼낸 표를 웃돈을 받고 암표상들이나 지인들에게 넘겼다.'라고 진술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올해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NC 대 LG) 4경기 입장권 내역서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확인 결과, KBO와 각 구단이 확보한 입장권 이외에 한 개인이 별도로 경기당 최소 6백여 장에서 최대 천4백여 장까지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그 구매자는 앞서 언급한 바로 T사 고위 관계자였습니다. 이 고위 관계자가 준플레오프 4경기에서만 미리 구매한 입장권은 4천 2백여 장, 액수로는 9천 5백만 원이 넘었습니다. KBO와 각 구단이 선수단 가족과 구단 관계자 등 업무상의 이유로 준비한 입장권이 수백 장에 불과한데, 개인 한 명이 천 장 넘게 샀다는 건 정상적인 업무 절차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관계자가 선점한 자리는 전산상 검은색으로 표시돼 있어 일반 관중은 아예 살 수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야구 관련
 
이뿐 아니라 제보자들은 이 고위 관계자가 포스트시즌뿐 아니라 정규시즌에서도 입장권을 빼돌려 왔다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근무하지도 않은 사람을 마치 일한 것처럼 서류를 작성해 인건비를 부당하게 가져가거나 입장권을 건넨 지인이 경기장에 들어가면 경기 시작 1~2시간 뒤 결제한 카드를 취소하는 수법으로 돈을 되돌려 받기도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암표상 단속 수사를 벌여온 경찰도 이런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지난 18일 T사를 압수수색해 컴퓨터 서버와 하드디스크, 관련 서류를 확보했습니다. 경찰은 이 고위 관계자가 빼돌린 입장권을 웃돈을 받고 암표상들에게 건넨 것으로 보고 이 관계자를 소환해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갈 방침입니다. 또, 조만간 업체 직원과 야구위원회 관계자들도 참고인으로 불러 수사를 확대할 방침입니다.
 
취재과정에서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입장권을 예매하기 위해 초조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수십 번 아니 수백, 수천 번 클릭했던 야구 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인터넷 접속 속도가 빠른 PC방에서 예매를 시도하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지인들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이들 야구 팬이 접한 건 ‘접속자 수가 많아 접속이 원활하지 않다'라는 문구였습니다. 야구를 아끼고 사랑하고, 직접 경기장을 찾아 관람해주는 팬이 있기에 프로야구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경찰수사를 통해 모든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그 과정을 시청자 여러분과 또 모든 야구 팬들과 함께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취재과정에서 서울 서부경찰서와 제보자(익명) 12명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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