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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나의 독재자'는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

영화 '나의 독재자'서 무명배우 성근 역<br>"가장 깊이 빠졌던 역할은 '박하사탕'의 영호"

설경구 "'나의 독재자'는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
배우 설경구(46)는 영화 '나의 독재자'에서 볼 살이 두둑하고, 배가 큼지막하게 나온 배우 성근 역을 소화했다. '역도산'에서 30㎏ 가까이 찌웠던 경험이 있던 설경구에게 몸집을 불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부른 자장면"을 먹고, "밤에 술과 안주"를 진탕 먹다 보면 어느 정도는 살이 쪘다. 22년의 세월을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탓에 늙은 성근을 위해 5시간에 걸쳐 화장을 해야 했으나 그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성근이라는 배우의 내면에 닿기가 오히려 더욱 어려운 작업이었다. 성근은 "김일성 역에서 의도적으로 빠져나오지 않은 것인가, 못 빠져나온 것인가"라는 질문이 연기하는 내내 설경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사람이 연극을 하는 것일까요? 지금도 모르겠어요. 연극을 하는 건지, 아니면 역할에서 아예 빠져나오지 못한 건지. 저는 70%는 의도적으로 안 빠져나왔다는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설경구는 성근 역할에 대해 여전히 "헷갈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영화에서 설경구가 맡은 성근은 무명배우다. 전단이나 붙이던 무명배우에서 어느 날 주연배우의 펑크 덕택에 리어왕 역을 맡는다. 단순히 대사를 외운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의 강점인 암기력이 실전에서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더듬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대사를 까먹었나 봐"라며 수군거린다.

지금은 베테랑 배우로 성장했지만, 설경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대학 4학년 때 처음으로 소극장 무대에 서 사시나무 떨 듯 떤 경험이 있다.

"미쳐 버리는 줄 알았어요. 머릿속에 하얘졌죠. 빨리 끝내고 내려가야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신인 시절을 밑거름 삼아 연기자로 착실하게 걸음을 내디딘 설경구도 성근처럼 빠져나오지 못한 배역이 있었을까.

"'박하사탕'이요. 아직도 못 빠져나왔나 싶기도 해요. 아무것도 모를 때 카메라 앞에 선 작품이어서 그런지, 오만 감정이 다 들어간 영화예요. 이후에 그런 감정을 못 느껴서 그런가? 아직도 못 빠져나온 것 같아요. 그때는 왜 그리 눈물이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술을 마셔도 울고, 노래를 불러도 울고…."

영화에서 성근은 김일성 역할에 평생토록 빠져 산다. 설경구는 김일성의 현장 지도 모습이 담긴 1시간가량의 영상을 보면서 김일성 행동의 특징들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그런 영상들은 '종편'에도 많이 나오잖아요. 보다 보니 김정은도 분명히 김일성의 흉내를 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동작이 똑같아요. 아무튼, 저는 영상을 보면서 무턱대고 따라 하진 않았어요. 감독님도 분장할 때 '절대 김일성처럼 만들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죠. 모든 출발점은 제가 되어야 했어요. 제가 김일성을 잘 알지도 못하고요."

무명배우의 이야기를 따라가던 영화는 후반부에 돌입하면서 부자간의 관계로 방향을 튼다. 성근은 자신이 김일성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성근의 아들 태식(박해일 분)은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삶을 살아간다.

그는 박해일과의 호흡에 대해 "9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부자관계가 과연 가능하겠냐'는 주변의 우려가 컸지"만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가진 "해맑음과 엉뚱함,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 잘 표현됐다"고 했다.

그는 영화에 대해 "독재자처럼 군림했지만, 결국에는 자식들에게 먹힌 아버지들의 이야기,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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