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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감독조합 신연식 감독 "충무로, 표준계약서 현실화 시급해"

[인터뷰] 감독조합 신연식 감독 "충무로, 표준계약서 현실화 시급해"
"韓 관객 2억 명 시대, 모든 감독이 배부른 건 아니다"
한국감독조합, 영화인 상생의 길 위해 '표준계약서' 현실화 촉구 


"전 세계 영화계에서 제작사가 수익의 40%를 가져가는 형태는 아마도 충무로밖에 없을 겁니다. 감독을 시켜준다는 이유로 초기 기획, 개발 단계를 위험을 투자자가 아닌 감독이 지는 기형적인 구조도 마찬가지고요"

한국 영화 관객 2억 명 시대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화를 많이 보는 영화 강국으로 발돋움 했다. 한 편의 영화가 1,8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꿈같은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이 화려한 수치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에 대한 대우는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2003년 9월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충무로 감독의 평균 연출료 7,930만 원.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지만, 연출료는 제자리걸음이다. 이는 영화 연출을 준비하는 예비 감독부터 입봉 후 차기작을 준비하는 감독까지 장밋빛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아래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박 흥행이 돈방석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수백만 관객을 동원하고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한 감독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현 충무로의 기형적인 제작구조 때문이다.

충무로의 환경 개선, 특히 감독들의 처우 개선과 권익 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단체가 있다. 바로 젊은 감독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사)한국영화감독조합(Director's Guild of Korea, 이하 '감독 조합'). 영화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의 이준익 감독 조합장을 맡고 있으며 정윤철, 김대승, 이미연, 변영주, 신연식 등 국내 대표 감독 100여 명이 소속돼 있다.

감독조합은 창작자들의 합리적 대우와 합당한 권리 보호를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이들의 숙원은 '표준계약서' 이행을 통해 창작자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제협(한국제작가협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제작사와 감독이 합리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상생의 길을 도모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충무로의 관행처럼 돼버린 낡은 시스템 개선이 동반되어야 할 이 일엔 수많은 협의와 대화가 필요하다. 

감독조합에서 이사진으로 활동하며 영화계 표준계약서 시행 촉구에 앞장서고 있는 신연식 감독을 만나 지난 2년간의 발자취를 살펴봤다.  

Q.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지 2년 째다. 한국감독조합은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해왔나?

A. 충무로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이 합리적 대우와 합당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제반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가장 큰일은 감독표준계약서를 만드는 일이다.

Q. 감독표준계약서는 예전에도 있었다. 이번에 개정된 계약서는 종전 것에서 보강된 것이라고 들었다. 어떤 차이가 있나?

A. 이번 표준계약서의 가장 큰 핵심은 본 계약과 기획·개발 계약을 나눈 것이다. 그동안 영화계는 감독 계약을 할 때 연출 계약서에 기획·개발 계약까지 뭉뚱그려 해왔다. 일례로 신인 감독이 가져온 아이템을 기획, 개발과 연출까지 퉁쳐서 몇백만 원에 계약을 하고 수년간 묶어두는 식이다. 감독을 시켜준다는 미명하에 창작자들을 희생시키는 형태다.

Q. 계약서가 한 장인 것과 두 장인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A. 매우 큰 차이다. 종전에는 감독에게 기획, 개발에 대한 책임과 연출에 대한 책임을 한꺼번에 떠넘겼다. 입봉시켜준다는 핑계로 제작 초기 리스크를 모두 감독에게 지게 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잘 되고 나면 감독에게 응당한 대우를 해주지도 않는다. 영화 수익의 40%를 제작사가 가져가고 있다.

Q. 표준계약서를 두 가지로 나눈 것은 힘없는 감독들을 위한 보호 장치 차원이라고 볼 수 있나?

A. 그렇다. 감독조합에서 조사를 해보니 2005년(상업영화 기준) 신인 감독의 평균 연출료가 5천만원 미만이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더 떨어졌더라. 기획, 개발단계에서부터 정당한 대우를 못 받으니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Q. 이같이 열악한 시스템이 수년간 지속돼 왔다면 환경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 표준 계약서 외 다른 대책도 마련하고 있는 것인지?

A. 표준계약서 도입 및 이행을 중심으로 하면서 제작위원회 방식이라던가 공동출자 방식으로 감독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투자사와 감독의 직거래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기에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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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충무로 제작사와 제작자들에게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엿보인다. 그들의 역할 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는 건가?

A. 모든 제작사와 제작자들을 신임할 수 없다는 게 아니다. 몇몇 힘 있는 제작자들의 횡포가 도를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러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몇몇 불합리한 사례를 통해 조합 내부에서 제작자의 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산업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도출됐다. 과연 제작사가 영화 전체 수익의 40%를 가져갈 만큼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감독조합 차원에서도 체계적인 연구를 할 예정이다.

Q. 최근 영화 '관상'과 KBS 드라마 '왕의 얼굴' 저작권 침해 소송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이 소송에서 우리 조합 측이 주목한 건 창작자의 의견이나 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초에 소송을 제기할 때 한재림 감독이나 김동혁 작가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조합 측에서 표절 여부에 대해서 물었을 때 원작자인 두 사람 모두 "표절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그러나 제작사 측에서는 소송을 강행했고, 결국 기각됐다. '관상'의 경우 소설 출판 당시 원작자에 대한 표기가 없어 성명권(저작권을 양도해도 창작자의 성명을 명시해야하는 것)을 위반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Q. 비단 대우가 안 좋은 건 작가나 스태프 직군이 더 심각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A. 감독들도 그동안 시나리오 작가의 처우에 대해 신경 쓰지 못했기에 조합 내부 자성의 목소리도 계속 나오고 있다. 영화 산업이 안정되려면 작가 처우가 훨씬 좋아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많은 사람이 "왜 우리나라 감독들은 꼭 자기 시나리오로 데뷔하려 하냐"라고 묻는 데 감독 대다수가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쟁력 있는 작가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본인이 직접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아무튼, 작가의 지위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감독조합 차원에서도 노력 중이다. 감독표준계약서 팀에서 작가표준계약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Q. 감독의 제 밥 그릇 지키기라는 부정적 의견도 나올 수 있을 듯 하다.

A. 영화는 1인 예술이 아닌 공동 작업이기에 기여도를 명확히 구분짓는 게 어렵다. 표준계약서는 그것을 세분화하는 방향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감독의 이익만을 위해 표준계약서를 만든 게 아니다. 사실 우리 조합의 이사진에 있는 사람 중 표준계약서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없다. 직접 제작까지 겸하는 감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계약서는 무명 감독과 신인 감독 등 제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창작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Q. 영화계 표준계약서에는 감독표준계약서, 작가표준계약서, 근로표준계약서, 상영표준계약서 등으로 세분화 돼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계약서가 있어도 실제로 이행이 안 되면 무용지물 아닌가.

A. 맞다. 조합별로 표준계약서로 만들고 있는데 문제는 이행 여부다. 위반 사례가 너무 많아 힘이 빠진다. 이 부분에 대해서 영화진흥위원회 쪽과도 이야기하고 있다. 위반 사례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고 이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에 대해서도 논의 중이다.

Q. 제협(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협조가 우선되어야 표준계약서의 이행이 현실화 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어느 정도 합의가 된 것인가?

A. 표준계약서 현실화를 위한 협의를 몇 차례 진행했다. 제협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더라도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우선은 이름있는 유명 감독들이 표준계약서를 제대로 이행해 본보기가 돼주길 조합 차원에서 독려하고 있다. 이름없는 감독이나 신인 작가가 자신의 컨텐츠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 신연식 감독은 2003년 영화 '피아노 레슨'으로 데뷔해 '좋은 배우', '페어 러브', '러시안 소설', '조류인간' 등을 발표하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네번째 장편 영화인 '러시안 소설'은 부산국제영화제 2관왕, 부일영화상 각본상, 로테르담 영화제 초청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 릴레이를 펼쳤다. 2013년에는 김기덕 감독과 공동 제작한 '배우는 배우다'로 상업 영화에 데뷔했다. 현재는 이준익 감독인 연출할 것으로 알려진 영화 '시인'(가제) 제작을 준비 중이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사진 =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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