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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일본의 깊어가는 '착각'…"이 얼굴들을 직시하라!"

'국제연대'만이 해법

[월드리포트] 일본의 깊어가는 '착각'…"이 얼굴들을 직시하라!"
< 위안부 할머니 사진전 / 일본 도쿄 신주쿠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기념관' 소재 >

도쿄 신주쿠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기념관' 입구에 전시돼 있는 사진들입니다.

한국, 북한, 중국, 타이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의 위안부 피해자 얼굴들이 걸려 있습니다. 이른바 일본의 양심세력이 운영하는 이 기념관은, 각국 시민단체와 연대해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문득 깨닫게 됩니다.

위안부 문제는 결코 '한일'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물론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과 중국인 피해자가 가장 많습니다. 하지만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 여성들은 물론 유럽 여성  피해자들의 존재도 금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유럽 여성들이 바로,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가 "유럽사람들이 알까봐" 그렇게 걱정한다는 '서양인 위안부', 스마랑 사건의 피해자들입니다. 1944년 일본군이 네덜란드 여성 35명을 '강제연행'해, 인도네시아 스마랑 섬에 억류한 뒤 위안부로 삼은 것이 스마랑 사건입니다. 물론 관련 군사재판 기록도 발굴돼,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존돼 있습니다.(조금 부끄러운 것은 이 문서를 발굴한 사람이 한국인 연구자가 아니라, 양심적인 일본인 역사학자라는 점입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 10월호 기고문에서 "위안부 이야기가 (유럽에) 퍼지면 큰일"이라면서 "(일본 정부가)그 전에 급히 손을 쓸 필요가 있다"고 썼죠. 아사히신문이, 제주도에서 위안부 200명을 강제연행했다는 '요시다 증언' 관련 과거기사를 취소한 것을 "세계를 향해 홍보하라"고 주문하는 겁니다. 일본 우파라는 얘기는 진작 들어왔지만, 이 정도로 '꼴통'인 줄은 몰랐네요. 일본의 극우들은 이렇게, 위안부 강제성을 '군과 관헌에 의한 직접적인 강제연행'으로 한정한 채, 아사히가 기사를 취소했으니 '강제성'도 없다는 아전인수를 끊임없이 강화하고 있습니다..

기념관의 사진들과, 시오노 나나미의 황당한 글을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국제연대'만이 유일한 해법입니다.

<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기념관을 이끌고 있는 '와타나베'씨(우측)입니다. 기자가 가리키고 있는 얼굴이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 '오헤른' 할머니입니다. 와타나베 씨는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인사로 한국 TV와도 여러차례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사진


그런 관점에서 흥미로운 기고문이 하나 나왔습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작가 '레이제이 아키히코'씨의 '뉴스위크 기고문'입니다. 물론 일본사람입니다. 제목이 조금 난해한데, "아사히 '오해'로, 일본이 '오해'를 받고 있다는 '오해'"입니다. 일본이 빠져들고 있는 엄청난 '착각'에 관한 글입니다.

아사히 과거기사가 잘못됐다고 해서 위안부 강제성이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세상에 통용될 수 없는 생각인지를 쓴 글입니다. 상당히 긴 글이라, '5가지 일본의 오해'를 요점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다고 '현재 일본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 군국주의 일본과 현재의 일본이 다르다는 것을, 세계인들은 다 이해해 준다. 여유를 가지고 과거를 대하라.

(2) 그렇기 때문에 과거 일본에 대한 잘못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거나, '일일이 반론'할 필요가 없다. '위안부 강제성'을 비판하는 것은 과거 군국주의 일본을 비판하는 것일 뿐이다.

(3) 그 반론 가운데 특히, '위안부 강제성'을 좁은 의미-넓은 의미로 분류한 뒤,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장 그만 둬라. 국제사회에 전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위안부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까지, '일본에 대해 반감'을 갖게 할 뿐이다.

(4) 일본이 '역사수정주의' 경향을 보일수록, 일본 이미지만 더 나빠진다.

(5) 그렇다고 세계가 일본에 뭔가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는다. 그냥 무시한다. 경제나 문화교류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의 존재감만 약해질 뿐이다.

한마디로 "세계에 통하지도 않고, 일본에만 손해다." 위안부 관련 '역사수정주의 캠페인'을 그만 둬라는 글입니다. 뭐랄까 '실용적 관점', 철학적으로는 '공리주의 관점-일본에 유리한 게 뭐냐 라는-'에서 위안부 문제에 접근하는 글입니다.

그러나 이정도의 내부 비판이나 자기검열의 목소리조차 현재의 일본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베 내각은 어제(14일) 끝내 '軍위안부 관련 홍보 강화'를 각의 결정까지 했습니다.
오늘은(15일) 집권 자민당이 '위안부 특명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위안부 문제 관련 정보, 즉 아사히신문의 기사 취소를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려 나가겠다는 겁니다.

아사히신문의 기사 취소를 세계에 적극 홍보하면, 세상 사람들도 과거 일본을 이해해 줄 것이라는 착각에-앞서 레이제이 아키히코씨는 오해라고 했지만- 빠졌습니다. "일본이 과거 나쁜 짓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강제연행까지) 나쁘진 않았다" 이런 말이 하고 싶은 걸까요?

일본 정부와 미디어는 '확증 편향'에 빠졌습니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주목합니다. 검은 백조를 찾아 '백조'라는 말이 틀렸다고 외치고 싶은 겁니다. 산케이에 더해 요미우리 신문까지, 이른바 '자학사관 비판' '역사수정주의 강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비판해 왔던 미디어들은, 자신들도 '아사히 꼴'이 날까봐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일본에 '위안부 관련 성의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바둑에서 최선의 '한수'는 상대방이 두고 싶은 자리에 두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일본에서 들려오는 '허튼 소리'에 얼굴 붉히는 게 아니라, 일본이 두려워하는 일을 묵묵히 하는 겁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걱정하는 일을 '현실로 만드는 것'입니다. 스마랑 사건과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기념관'에 걸린 각국 위안부 할머니들의 얼굴을 직시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과 싸울 게 아니라,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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