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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첫 진보 교육감 이청연 당선인은 누구?

전교조 인천지부장·인천자원봉사센터장 역임…인성교육 역점 전망

인천 첫 진보 교육감인 이청연 당선인은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을 만난 것이 인생을 바꾼 첫 번째 전환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전교조 설립을 주도했다가 해고당하고 학교 담을 넘어 교실에 변화를 일으키겠다며 교육위원에 도전했던 '좌충우돌'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 당선인은 충남 예산의 농가에서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초·중·고교는 모두 충남에서 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골목대장을 맡으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던 이 당선인은 이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고 재수 끝에 경인교대(당시 인천교대)에 진학했다.

1975년 대학을 졸업한 뒤 1년 반만인 1976년 6월 경기도 연천 농촌마을로 첫 부임을 받았다.

이 당선인은 교직에 있던 시절 시간만 나면 교실에서 아이들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한 해도 빠짐없이 학급 문집을 만들었고 어린이날에는 학생에게 편지를 썼다. 그 와중에도 학교장이 사사건건 교사를 간섭하고 교사는 학생을 상대로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학교 문화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교육 현장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목격할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1987년 6월 민주화 대투쟁에 이은 노동자 대 투쟁으로 전국 곳곳이 들썩거리던 그해 9월의 일이었다.

같은 학교 후배 교사를 따라 인천 남구 주안5동 성당에 갔다. 교사들이 교육 현실을 논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막상 성당에 도착하니 교장, 교감, 교무주임이 입구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누가 참석했나 확인하려는, 소위 '채증' 하러 나온 것이었고 결국 그날 모임은 열리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 당선인은 전교조 설립을 주도하게 됐고, 전교조 교사 1천500명이 대량 해고될 때 그 역시 해고됐다. 1994년 복직될 때까지 4년 7개월을 거리의 교사로 살았다.

2001년에는 전교조 인천지부장을 맡았고, 2006년 교육위원에 당선돼 교단을 떠나기 전까지 전교조는 늘 그의 활동의 뿌리였다.

교육위원 활동 중 가장 뜻깊었던 일은 한센병 환자 자녀에 대한 '미감아'(未感兒·한센병 환자의 자녀로 아직 한센병에 걸리지 않은 어린이) 낙인을 없앤 것이다.

조사 결과 한센병 환자 자녀의 발병 소지가 희박한 것으로 나오자 그는 집요한 문제 제기로 한센병 환자 자녀 학급 분리제도를 없앴다.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 터닝포인트는 인천시 자원봉사센터 회장으로 일하던 지난 3년이다. 2010년 선거에서 0.3%의 근소한 차이로 나근형 현 교육감에게 패배한 직후 그는 자원봉사의 길을 걸었다. 25년간의 교직 활동이 '교육 현장'을 경험하게 했다면, 자원봉사센터 활동은 그에게 '삶의 현장'을 맛보게 했다.

이 당선인은 5일 "경쟁에서 살아남기만 강요하는 교육 현실에서는 아이들의 인성이 자랄 수 없다"며 "학교 현장의 변화와 자원봉사의 경험이 만난다면 학교 폭력, 인성 회복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두 가지를 접목해 인천 교육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인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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