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명저 '풀하우스'와, 정재승 교수와 열혈 야구팬들이 함께 쓴 '백인천 프로젝트'에서 거듭 확인하는 명제다. 시즌 타율 4할이나 80홈런의 타자나, 0점대 방어율의 선발투수, 7할 승률의 팀이 사라져가는 이유다. 한 명의 천재, 혹은 슈퍼 강팀이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남기며 리그를 지배하는 건 고교야구나 만화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이, 더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프로리그에서는 선수와 팀간의 전력차가 갈수록 줄어든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올 시즌 삼성 투수진의 위력은 더욱 놀랍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각 팀들은 경기당 5.66점을 내주고 있다. 지난해보다 22%나 증가했고,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치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역대 최고치는 1930년의 5.55점이다.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는 1950년 5.00점을 찍은 뒤 한 번도 5점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퍼시픽리그는 2004년의 5.20점이 역대 최고치다. 즉 우리는 세계 프로야구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타고투저 현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험악해진 환경 속에서도, 삼성 마운드는 '독야청청'하다.어제 KIA에게 한 점만 내주며 팀 평균자책점이 3.95로 떨어져 시즌 처음으로 3점대로 진입했다.지난해보다 리그 평균자책점이 20%나 치솟고, 다른 8개팀의 평균자책점이 모두 지난해보다 악화된 상황에서, 삼성만 지난해의 3.98에서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삼성의 팀 평균자책점 3.95는 리그 전체 평균자책점 5.19의 76.1%에 불과하다.
21세기 들어, 리그 전체와 비교해 이렇게 '홀로 독보적으로 잘 던지는' 투수진은 없었다.
연도 | 팀 | 평균자책점 | 리그 전체 평균자책점 | 리그 평균 대비 |
2014 | 삼성 | 3.95 | 5.19 | 76.1% |
2009 | SK | 3.67 | 4.80 | 76.5% |
2008 | SK | 3.22 | 4.12 | 78.2% |
2011 | 삼성 | 3.35 | 4.14 | 80.9% |
2010 | SK | 3.71 | 4.58 | 81% |
2005 | 두산 | 3.42 | 4.22 | 81% |
삼성 투수진의 삼진과 볼넷 비율은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더 경이로운 건, 경기당 피홈런이 지난해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경기당 홈런이 지난해보다 35%나 증가한 리그 환경에서, 삼성만 홈런을 덜 맞고 있는 것이다.
경기당 홈런 | 리그 전체 | 삼성 경기당 피홈런 |
2013년 | 0.69 | 0.77 |
2014년 | 0.94 | 070 |
삼성 투수 개개인의 기록을 보면, 올해 '유레카적 기량 향상'을 맞은 투수는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예년처럼' 던지고 있다. (물론 올 시즌에 '예년처럼' 던지는 건 놀라운 일이다) 지난 시즌 삼성팬들의 속을 시커멓게 만들었던 '로드리게스-카리대' 콤비 대신 마틴이 가세한 점 정도 외엔 인력 보강을 통한 마운드 향상도도 보이지 않는다. 임창용의 가세했지만 오승환이 떠났다. 즉 '팀 투수진 향상의 일등공신'이라 할만한 선수한 두 명을 꼽기란 불가능하다.
즉 삼성 마운드는 특정 선수의 대활약 없이 '역대급'으로 리그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수진 전체가 이 험악해진 환경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내고 공유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