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 한파가 매서운 중국에서 오늘 또 다시 비리 공직자 관련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공산당 최고 감찰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전 베이징시 공안국 교통관리국장인 쑹젠궈(宋建國)를 엄중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서울시경 교통관리관에 해당하는 쑹 전 국장은 대체 어떤 비리를 저지른 것일까요? 한국 같으면 아마 교통범칙금 같은 것을 눈 감아 주는 댓가로 뇌물을 받아 챙기거나 신호등 시스템 교체 같은 이권 사업에 관여했다거나 이런 것들을 예상할 수 있을 텐데요. 베이징 사람들은 아마도 그 어느 것보다 먼저 자동차 번호판을 떠올릴 겁니다.
도대체 그까짓 철판 한 장에 불과한 번호판이 뭐길래? 하지만 베이징의 오너드라이버들에게 번호판은 자신의 애마 만큼이나 귀한 물건입니다.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해도 쉽게 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베이징시는 심각한 대기 오염과 극심한 교통 정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감안해 자동차 등록 억제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그 핵심이 바로 2012년 1월부터 도입한 ‘야오하오(搖號)’라 불리는 자동차 번호판 추첨제입니다. 베이징시 교통 당국은 이 ‘야오하오’를 통해 현재 이미 550만대인 승용차 수를 오는 2017년까지 6백만대 수준에 묶어 두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교통당국의 최고 책임자였던 쑹 전 국장이 자신이 제안했거나 혹은 승인했었을 야오하오를 조작해 특정인들이 당첨되도록 편의를 봐주는 댓가로 금품과 이권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공직자 비리 사건이 항상 그렇지만 이번에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됐습니다.
‘야오하오’는 말 그대로 은행알 뽑기인데 요즘은 당연히 컴퓨터로 자동 추첨이 진행됩니다. 당첨이 돼야 비로소 정식으로 차량을 등록하고 몰고 다닐 수 있습니다. '야오하오' 도입 직후 베이징시 공안당국은 추첨이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감찰 부서 관계자와 공증인이 입회한 가운데 추첨 행사를 CCTV를 통해 생중계하기까지 했습니다. 월 평균 당첨되는 번호는 대략 2만 개 정도인데 경쟁률은 보통 100대 1이 넘습니다. 낙첨자는 계속 쌓이는 데 내년부터는 당첨 번호판 수를 월 평균 1만 7천대로 낮춘다는 계획이어서 내년에는 번호판 경쟁률이 무려 130대 1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선착순이 아닌 만큼 운이 나쁠 경우엔 몇 달 혹은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추첨은 짝수 달 26일 오전 10시에 이뤄집니다. 당첨자가 발표되는 날이면 행운을 움켜 쥔 당첨자들이 친지와 친구들을 잔뜩 불러 모아 크게 한 턱 내는 게 당연한 도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정도면 로또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듯 합니다.
번호판 추첨이 이처럼 로또추첨이 되다보니 번호판 취득이 음성화되는 부작용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이번처럼 공직자가 개입한 추첨 조작 외에도 불법으로 번호판을 달아주거나 암시장에서 번호판이 임대되기도 합니다. 자동차 번호판 1천 개를 확보해 놓고 1개당 1만 위안, 우리 돈 180만원 씩 받고 임대하다 적발된 사람도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다른 지역에서 발급 받은 번호판을 베이징 번호판으로 위조해 판매하는 암거래상도 판을 치고 있습니다. 자기가 당첨 받은 번호판을 경매를 통해 남에게 파는 경우도 허다한데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8이나 9가 많이 들어간 번호판은 가격이 천문학적입니다(8은 부자 된다는 의미의 ‘發’, 9는 오래 산다는 ‘久’와 같은 발음). 왠만한 차 가격을 뛰어넘는 값을 치르고서라도 행운의 번호를 얻으려는 욕심 많은 중국인들은 넘쳐납니다. 지난 1월 광둥성 선전시에서 번호판 경매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황제 번호판이 탄생했습니다. ‘B8888R’ 번호가 172만 위안, 약 3억 원에 낙찰됐고, ‘B9999S’ 번호판은 168만 위안에 팔렸습니다. 역대 최고가라고 합니다.
중국 대륙에 운전면허 보유자는 대략 3억 명, 10~15년 뒤면 10억 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동차 번호판 확보 경쟁은 갈수록 심해질 텐데 이번 사건으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자동차 번호 추첨제가 어떻게 다시 중국인들의 믿음을 얻을 수 있을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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