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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워싱턴의 벚꽃이 불편한 이유

[월드리포트] 워싱턴의 벚꽃이 불편한 이유
 # 2014 4월 워싱턴
워싱턴의 봄은 벚꽃과 함께 시작한다. 폭설에 한파에 겨울이 유난히 길었던 올해도 자연의 섭리는 어김이 없다. 겨울의 끝자락이 아직 꼬리를 달고 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워싱턴의 명물 벚꽃이 군데 군데 화사한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도쿄 신주쿠 교엔이나 우에노 공원의 벚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워싱턴의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미국은 광활한 영토에 다양한 자연을 가진 나라이기는 하지만 사실 한국처럼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찾기는 쉽지 않은 곳이다. 미국인들에게 워싱턴의 벚꽃 놀이는 그래서 일년에 단 한번 눈의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기회다. 그것도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에만 삼사 일에 불과하니 결코 놓칠 수 없는 볼거리이기도 하다. 올해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나 같은 외신 기자들이 모여 있는 프레스 빌딩 주변에도 관광객들이 떼지어 몰려 다닌다. 벚꽃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워싱턴에는 전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 들고 워싱턴 시 당국은 한해 관광수입의 3분의 1가량을 이때 올린다고 한다. 그야말로 효자 벚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사무실에서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인 타이들 베이신(워싱턴의 인공 호수)주변의 벚꽃 구경을 간 적이 없다. 오가면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일부러 시간 내서 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여의도 국회 의사당 주변의 벚꽃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워싱턴 벚꽃


 # 1905 7월 도쿄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갈 무렵인 1905년 7월,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를 도쿄에 파견했다. 그를 맞은 것은 일본 제국의 수상 가쓰다 다로, 두 사람은 7월 말 비밀 회동을 갖고 각서를 만들었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을 가져야 하며 미국은 필리핀을 가지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그 해 11월 17일 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해 가는 폭거를 저질렀다. 고종황제는 이를 막기 위해 필사적인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미 성사된 뒷거래 탓인지 뜻을 이루지 못했다..

# 1909 4월 백악관
새 대통령 영부인 헬렌 태프트는 워싱턴에 벚나무를 심기 위해 애쓰고 있던 스키드모어 부인에게 편지를 썼다. 일본의 벚나무를 들여올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한 데 대한 답장이었다. 헬렌 태프트는 물론 4년전 일본을 방문해 밀약을 맺었던 윌리엄 태프트의 부인이었다. 태프트 부인은 이 편지에서 일본의 벚나무를 들여올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고 약속했고 이듬해 1월 2천그루의 벚나무가 일본으로부터 도착했다. 대한제국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하지만 처음 미국에 도착한 벚나무는 병충해 때문에 모조리 소각 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미국이 크게 실망하자 일본은 도쿄 시장이 중심이 되어 2차 벚꽃 공수에 착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1912년 2월 14일 12종류의 벚나무 3020 그루가 워싱턴에 다시 도착했다.

# 다시 2014년 봄 워싱턴
이렇게 도쿄의 벚나무가 워싱턴으로 건너와 뿌리를 내린 지 벌써 102년이다. 해마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워싱턴의 일본 외교관들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미국 내는 물론 전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미일 우호의 상징 벚꽃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다. 동아시아의 역사전쟁이 치열해 진 최근 이런 움직임은 더 긴박해졌다. 벚꽃 축제를 후원하겠다는 일본 기업들이 줄을 잇고 때를 놓칠 새라 미일 관계의 끈끈함을 확인하려는 세미나도 곳곳에서 안내 간판을 세우기 시작한다. “진주만 공습도 히로시마 원자탄도 워싱턴의 벚꽃을 없애지는 못했지요.” “우리의 우정은 100년 이상 튼튼하게 뿌리 내린 벚나무 뿌리 만큼 깊고 벚꽃 만큼 화려하답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 하다. 그래서 일본의 ‘소프트 외교’는 4월에 가장 화려하다. 워싱턴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일본 고위 외교관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100년 전 그들의 선조가 심어놓은 벚나무가 대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동아시아 역사 전쟁에서 미국은 우리 편인가?  올해는 긴 겨울을 뚫고 나온 벚꽃이 유난히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화려함이 더 아프게 와 닿는다. 누군가가 여의도 윤중로의 벚나무 몇 그루를 몰래 베어 버렸다는 몇 해 전 기사가 떠오를 때도 있다. 하지만 나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들은 그저 때가 되면 꽃을 피울 뿐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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