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 모녀가 빈소도 차리지 못한 채 지난 금요일 화장됐습니다. 사망 추정일로부터 대략 일주일 만에 이웃에게 발견됐다는 것,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도 2월 치 방값과 공과금을 놓고 갔다는 것이 사람들의 가슴을 더 먹먹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 모녀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의 추모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지 가늠이 안 된다. 미안할 뿐이다.'는 내용부터 세 모녀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라며 우리 복지 시스템의 구조와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반성하는 애도의 메시지까지, 애도의 물결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3년 전 최고은 작가의 죽음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때부터 대략 3년 전, 젊은 작가 한명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지병과 생활고로 힘들어 하다 이웃에게 숨진 채 발견된 최고은 작가였습니다. 남는 밥이나 김치가 있으면 자신의 집 문을 두드려 달라는 메모를 숨지기 전 이웃집에 붙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했습니다.
이후 정치권은 부랴부랴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들을 지원할 수 있는 법 제정에 들어갔고, 소위 최고은법이라고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은 재작년 11월부터 시행됐습니다.
◈비극의 반복, 하지만...
생활고로 힘들어 하다 숨졌다는 점, 이웃의 무관심 속에 숨지고 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발견됐다는 점, 우리 복지 시스템이 당사자의 어려움을 알지도 못 했고, 돕지 못했다는 점까지. 세 모녀의 죽음과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비슷한 면이 적지 않습니다. 3년의 시간을 두고 이런 비극이 왜 반복된 걸까요?
최고은 작가의 죽음 이후, 정부와 정치권은 최고은 작가의 '작가'라는 특수성에 초점을 맞춰서 예술인복지법을 만들어 냈습니다.(예술인복지법 자체도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응당 강구됐어야 하는 30대 여성 최고은, 아니 시민 최고은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방안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세 모녀의 죽음 이후 정치권도 애도의 메시지를 경쟁적으로 내 놓고 있습니다. 한 야당 대변인은 브리핑을 진행하다가 눈물을 왈칵 쏟는 바람에 결국 서면 브리핑으로 대체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립니다. 안타까운 죽음이다보니 그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마냥 마음이 가지만은 않습니다. 3년 전 최고은 작가의 죽음과 그간 알려졌던 안타까운 죽음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 한 채 공식처럼 반복하고 있는 논평과 대책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복지 국가가 꿈이라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오히려 복지는 뒷전으로 가고 경제 성장이 국정과제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복지 공약이 줄줄이 후퇴되고 있는데 대해서, "선거 때는 무슨 말을 못 하겠냐"는 식의 귀를 의심케 하는 변명까지 들립니다. 그랬던 정부와 정당, 그것을 전혀 막지 못하고 일정 부분 동조하기도 했던 정당이 세 모녀의 죽음이 마치 처음 있는 일 인양 안타깝다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니 씁쓸할 뿐입니다.
◈진짜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세 모녀의 죽음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니 정부와 정치권은 이런 비극을 막을 방안을 마련할 겁니다. 아니 최소한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은 보여 주겠죠. 하지만, 3년 전 최고은 작가의 죽음 이후와 같이 복지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이 아닌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부분적 처방에 그친다면 이런 비극은 또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꼼꼼히 따져보고, 복지 체계 전반을 점검해야할 겁니다. 감세를 하겠다면서 복지 예산은 늘리고, 복지 관련을 인력을 충원하겠다는 비현실적 대책이 나와서는 안 될 겁니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토마스 프랭크는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등 일련의 책을 통해서 왜 일반 시민과 배치되는 정책들이 나오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정책을 앞장서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현재 자리 이후의 삶을 생각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은 자신에게 직장과 돈을 줄 수 있는 소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정책을 폅니다. 일반 시민과는 배치되는 정책을 펴는 것인데 선거 때는 어떻게 지지를 얻느냐? 선거 때는 정책보다는 가치, 완곡하게 표현하면 정쟁을 앞세워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다는 겁니다. 정책보다는 낙태나 종교 등의 이슈를 중심으로 선거판을 짜서 정책이 쟁점화되는 것을 막는 전략입니다. 이런 설명이 비단 미국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 모녀의 죽음 이후 인터넷에서는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뭐 했냐는 울분에 찬 댓글이 많이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 자신이 그런 정파나 정당을 지지해 왔던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정책보다는 이미지와 정쟁에 따라 지지 정당을 선택해 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한 순간의 비판보다 중요한 비극의 재발을 막는 대책마련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이웃에게 욕보이지 않으려고 방값과 공과금을 놓고 간 세 모녀. 당뇨 등 지병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 했다는 30대 딸.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었던 30대의 또 다른 딸. 때문에 식당일을 하면서 집안을 책임질 수밖에 없었던 60대 어머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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