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필은 ‘상속자들’에 출연하기 전 1년 가까이 연기자 지망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송지오 디자이너의 쇼를 통해서 화려하게 데뷔한 양승필은 이후 3년 간 장광효, 우영미 디자이너 등 유명 쇼 런웨이를 장식했다. 이후 대학진학과 함께 순조롭게 연기자로 전향했지만 기회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1년 정도 오디션만 본 것 같아요. 모델과 연기자는 너무나 다르더라고요. 제 기억에 적어도 스무 편은 넘게 떨어졌어요. 오디션에서 떨어질 때의 속상함은 익숙해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만난 작품이 ‘상속자들’이었어요. 이 기회는 꼭 잡아야돼, 라고 생각하고 오디션에 응했는데 결과는요? 또 떨어진 거죠.”
양승필은 희망보다 좌절이 더 가까운 듯 했다. 그랬던 순간 다시 희망이 찾아왔다. ‘상속자들’ 속 다른 역할의 오디션을 치를 기회가 온 것. “제가 오디션 때마다 지적을 받았던 게 ‘눈 깜빡임’이었어요. 눈 깜빡이지 않는 것, 함께 오디션을 치른 배우의 기에 눌리지 않을 것, 이 두 가지만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애 첫 배역이 제게 왔어요.”
‘상속자들’을 통해 양승필은 배우라는 이름으로 처음 불리게 됐지만, 출연 전 누구보다 걱정이 많았다. 경험이 전무한 생 초짜 신인이 작품에 오점을 남길까 두려웠던 것. 여기에 ‘신인들은 딱 세 번 기회를 갖는다. 이 이상 NG를 내면 끝이다. 신인에게 스태프들의 관용은 없다’는 방송계 무심무시한 소문은 양승필을 더욱 두렵게 했다. 하지만 양승필이 직접 겪은 ‘상속자들’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강신효 PD는 세심하고 따뜻하게 연기지도를 해줬고, 모델이자 연기자 선배인 김우빈은 누구보다 애정 어리게 양승필을 대해줬다.
“‘상속자들’을 통해 얻은 건 경험과 자신감이에요. ‘어떤 배우가 되어야 겠다’라는 건 선배 연기자들을 보면서 많이 느꼈어요. 특히 이민호 선배는요, 톱스타인데도 촬영장에서 궂은일을 앞장서서 다 해요. 아무리 촬영이 힘들어도 눈살 한번 찌푸린 적이 없어요. ‘배우란 이런 거구나. 내가 잘 선택한 거구나’라고 느꼈죠. 그리고 우빈이 형의 배려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양승필의 첫 도전에 소속사 선배인 배우 재희의 애정 어린 도움의 힘이 컸다. 재희는 본인 스케줄 끝나자마자 회사로 달려와 양승필의 짧은 대사 한줄까지도 다 맞춰줬다. “형에게는 정말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워요. 형은 제 연기를 지도해줬을 뿐만 아니라 좋은 얘기도 많이 해줬어요. 재희 형은 신인의 자세에 대해서 늘 강조해줬어요. ‘이런 마음이 연기 인생에서 정말 큰 버팀목이 될 거’라고 말해줬어요.”
그래서일까. 양승필은 첫 연기도전 치고 전혀 어색함 없이 제 역할을 잘 해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김우빈과 함께 있는 껄렁껄렁하고 얄미운 저 남자들 2명은 누구냐”는 질문이 올라올 정도로 존재감이 상당했다. 극중 캐릭터와 실제 양승필은 얼마나 닮아 있을까. ‘정반대’라는 게 주위 사람들의 전언이다.
“보기에는 안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은 조용하고 진지한 성격이에요. 술, 담배 하지 않고요. 대신 친구들과 함께 운동을 다니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취미예요.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어요. 로스쿨에 다니는 큰누나의 책장에는 늘 책이 한가득이었어요. 자연스럽게 누나 책장에서 책을 뽑아서 읽는 게 습관이 됐어요. 말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 책만 읽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더글라스 케네디를 좋아해요.”
23살이면 한창 연애에도 관심이 많을 나이. 하지만 양승필은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게 더 재밌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그렇다면 ‘상속자들’에 출연했던 여배우들 가운데 가장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양승필은 ‘크리스탈’의 이름을 꼽았다. 수줍어 볼이 빨갛게 변하면서도 양승필은 “그 분이 현장에 오면 분위기 자체가 밝아졌다. 그런 느낌이 굉장히 예뻐보였다.”고 답했다.
이제 양승필은 연기자로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그의 첫 연기 도전은, 발을 떼는 데는 1년이 걸렸지만, 두 번째 걸음의 보폭은 훨씬 더 쉽고 가벼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줬다. 양승필은 “거창한 계획은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8년 뒤 서른이 돼 뒤돌아 봤을 때 “자식, 좀 독하게 살았구나.”라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목표마저 범상찮은 양승필의 패기 어린 다짐은, 슈퍼루키 탄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경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