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이 수소폭탄을 개발한 지 12일(현지시간)로 60주년이 됐다.
소련은 미국보다 약 1년이 늦은 1953년 8월 12일 카자흐스탄 동북부 세미팔라틴스크 지역의 핵 실험장에서 처음으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이타르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매년 8월 12일이면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는 러시아 학자와 전문가들이 소련 시절 수소폭탄 개발이 이뤄진 러시아 중부 니줴고로드스카야주(州) 사로프의 핵연구소에 모여 수소폭탄 개발을 기념한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이날 핵연구소 직원들에게 보낸 축전에서 "신세대 핵무기 개발은 국가 안보를 지키는 효율적 수단이 됐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지구의 굳건한 평화를 보장하는 전 지구적 핵 억지력 체제 건설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치하했다.
1953년 당시 25~27세의 젊은 핵과학자들이 '아르자마스-16'으로 불린 폐쇄 도시 사로프의 깊은 숲 속에 위치한 비밀 연구소에서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의 수소폭탄을 개발했다.
수소폭탄 개발에 이론적으로 결정적 기여를 해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는 당시 32세였다.
플루토늄 기폭장치를 한 지점이 아니라 여러 층으로 넣는 방안을 제시한 사하로프 덕택에 소련은 운반할 수 있는 소형화한 수소폭탄을 개발할 수 있었다.
소련의 첫 수소폭탄은 7t 무게로 투폴례프(Tu)-16 폭격기에 실을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이 1952년 11월 태평양 해상에서 처음으로 실험에 성공했던 수소폭탄은 54t으로 3층짜리 주택만 한 크기였다.
핵물리학자이자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인 라디 일카예프는 당시 소련 전문가들이 개발한 수소폭탄은 미국이 1952년 개발한 것보다 크기가 현저히 줄고 성능이 향상된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수소폭탄 실험에 앞서 세미팔라틴스크에는 영화 촬영용 세트와 비슷한 거대한 주거지역 형태의 실험장이 마련됐다.
실험장 안에는 주택·공장·다리 등의 인공 구조물이 설치됐고 탱크·전투기·대포 등의 무기와 말·양·개·새 등의 동물들을 갖다 뒀다.
수소폭탄은 40m 높이의 철제 탑에 설치됐고 폭발 신호는 벙커 안에 있던 원격 조정장치를 이용해 보냈다.
원격 조정장치의 단추를 누른 사람은 당시 32세의 핵물리학자 알렉산드르 자하렌코프로 그는 이후 원자력 분야를 총괄하는 중기계부의 부장관을 지냈다.
실험장에서 250m~7km 떨어진 거리에서 폭발 장면을 지켜본 실험 참가자들은 먼저 엄청난 섬광에 이어 버섯모양의 구름이 하늘로 치솟는 것을 목격했다.
물리수학자 레오니트 티모닌은 나중에 "폭발 지점에서 반경 수십 미터 지역이 모두 재로 뒤덮였고 모든 구조물과 무기 등은 완전히 파괴됐으며 살아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며 "무서운 광경이었다"고 증언했다.
실험장 4km 반경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린 폭탄의 폭발력은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미국 원자폭탄의 20배에 달한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저명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수소폭탄의 위력과 관련 "어떤 무기가 제3차 세계대전에 사용될지 모르지만 3차 세계대전 후에는 아마도 인류가 막대기와 돌을 들고 싸우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한편 카자흐스탄 라디오 방송 '아자트틱'은 수소폭탄 개발 60주년과 관련한 특별 프로그램에서 폭탄 실험 당시 9학년(중학교 3학년)이었던 세미팔라틴스크 지역 주민의 증언을 내보냈다.
이 주민은 "나를 포함한 마을 주민들을 대부분 대피시켰는데 청년 공산당원 42명은 실험용으로 남겨뒀다"며 "그들 가운데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가 40세가 되기 전에 각종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방사성 물질 피폭에 따른 암 등의 질병으로 사망한 것이란 주장이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주변의 모든 것이 재로 변했다. 무서운 광경이었다"
옛 소련 수소폭탄 개발 60주년…히로시마 원폭 20배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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