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이 '감시자들'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영화는 '호우시절'(2009) 이후 4년 만이다. 데뷔작 '구미호'(1994)로 거슬러 올라가면 올해로 배우 경력 20년차. 40대 들어 첫 영화를 맞이하는 그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어렸을 땐 눈에 독기(毒氣)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젠 깊어진 것 같아요."
24일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지난 세월이 준 연륜을 이렇게 표현했다.
"언제나 '나이를 잘 먹어야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30대가 되면 남자가 될 줄 알았는데 막상 30대가 되니까 20대랑 별반 다를 바 없더라고요. 30대 중반에도 정신이 없었던 것 같고 40대가 되니까 이제 남자가 됐구나 싶고 뭘 좀 알게 된 느낌이 들어요. 표현 방식에서도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대처할 수 있게 됐죠. 배우로서도 20년이 되니까 여유가 많이 생겼고요. 그게 경력이 주는 연륜인 것 같아요."
이번 영화 '감시자들' 역시 그런 연륜과 선구안이 없었다면 선뜻 집어들기 어려웠을 작품이다. 주인공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냉혹한 악당(제임스) 역할이다. 제작사 쪽에서도 정우성이 이 역할을 맡아줄 거라는 기대 없이 시나리오를 건넸다고 한다. 다른 작품을 마다하고 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악역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제임스가 서브(sub) 캐릭터인데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영화 전체의 긴박감이 달라질 수 있는 구조를 띠고 있더라고요. 내 눈에는 이 역할이 다른 시나리오들의 메인 캐릭터보다 더 크게 보였어요. 이렇게 재미있게 본 캐릭터를 다른 배우가 하는 걸 보기는 싫었고요."
'감시자들'은 지난 4년간 영화 현장을 떠나 있으면서 느꼈던 목마름을 해소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를 빨리해야 되겠다는 생각, 많이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본분이 영화배우고, 어떻게 하다 보니 '놈놈놈'('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호우시절' 이후 영화 쪽에서 떨어져 있었잖아요. 글로벌 프로젝트인 대작 영화에 들어가기로 돼 있었는데, 그게 결국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공백이 생겼고 팬들과의 거리도 멀어진 느낌이었죠. 그래서 드라마도 서둘러 하고 '빠담빠담'을 끝내고는 영화가 너무 아쉬워서 좋은 작품을 열심히 찾았어요. 그 와중에 만난 게 '감시자들'이죠."
이 영화에서 정우성은 기존의 악당들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 고층빌딩 옥상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범행 작전을 지휘하는 그의 모습은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절제된 손놀림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방을 제압하는 액션 장면도 압권이다. 영화에 뚜렷이 설명되진 않지만, 그가 어릴 때부터 냉혹한 범죄 전문가로 훈련됐다는 설정은 고독한 분위기를 더하며 연민마저 불러 일으킨다.
"처음에 제임스의 배경 이야기를 더 탄탄하게 만들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저는 그러지 말자고 했어요. 황반장(설경구 분)과 하윤주(한효주)가 주인공인 영화에 제임스는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죠. 완성본을 보니 제가 처음 염두에 뒀던 악역의 모습이 의도한 만큼 충분히 나온 것 같다는 느낌이어서 만족스러워요. 잔 감정을 우려내려고 하는 장면이 없고 딱 필요한 절제선을 지키는 영화인 것 같아요. 비주얼 측면에서 멋스럽게 전달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고요(웃음)."
그는 비슷한 악역 캐릭터로 알랭 드롱의 '사무라이'를 염두에 뒀다고 했다.
"알랭 드롱이 악역 전문이잖아요. 그런데 되게 절제돼 있고 영화를 보면 죽을 때도 아주 깨끗해요. 나쁜 짓 하면 저렇게 죽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죠. 저도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액션 시퀀스에서 그는 17명을 상대로 싸우는 액션 연기를 직접 해냈다. 그의 히트작 '비트'의 명대사인 "17대 1 싸움"을 떠올리게 한다.
"우연히도 이번에 17대 1로 싸우게 됐어요. 롱테이크로 한 번에 찍어야 하는 장면이어서 긴 호흡을 익혀야 했죠. 액션스쿨에 세 번 가서 연습했는데, 기본적인 동작이나 합은 그동안 워낙 해오며 몸에 익힌 것들이 있어서 그리 어렵진 않았죠."
그는 연출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그룹 G.O.D의 뮤직비디오 몇 편을 연출했으며 최근에는 휴대전화 '갤럭시 S4'의 광고 영상을 연출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또 하나의 꿈이라고 했으니까 생각은 계속 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입봉은 마흔을 넘기지 말아야지'라는 얘기도 했었는데, '놈놈놈' 끝나고 입봉을 준비하다가 글로벌 프로젝트 출연을 준비하면서 어긋났어요. 시나리오는 써놓은 것도 있고 다른 아이템들이 쑥쑥 나오는 것도 있어서 좋은 작가를 찾아서 함께해보려고 합니다."
그는 감독이 오히려 자신의 적성에 더 맞는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감독이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현장 촬영도 재미있지만, 편집실에 붙어서 작업하면서 작품이 하나의 생명을 가진 것처럼 나올 때 되게 짜릿한 느낌이 들었어요. 2000년대에 G.O.D 뮤직비디오 '그대 날 떠난 후로'를 찍었을 때 편집실에 있는 게 제일 좋다는 걸 처음 느꼈죠. 감독으로서 전체적인 걸 다 고민하게 되고 모든 캐릭터에 대한 희로애락이나 당위성을 생각하는 게 적성에 더 맞는 것 같아요."
가장 하고 싶은 장르는 '천장지구'나 '열혈남아' 같은 액션 멜로라고 했다.
"그런데 이전에도 감독을 했던 배우들이 많잖아요. 청춘스타 정우성이 감독의 꿈이 있다고 하니까 지켜보고 기다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시대에 배우가 감독하는 게 특별하거나 새로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작품세계를 보여주느냐가 관건이죠."
배우로서의 정진도 멈추지 않을 거라고 했다. 차기작은 '내기 바둑'을 소재로 한 액션영화 '신의 한 수'. 이달 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결혼 계획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다.
"여자를 먼저 찾아야 하는데, 영화를 계속 하다 보니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요."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