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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고리 3, 4호기 내진설계 시험성적서도 위조

한국 원전기술 신뢰성 바닥에 추락

[취재파일] 신고리 3, 4호기 내진설계 시험성적서도 위조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 국내 원전에는 '피동형 자가촉매 재결합기', 또는 '피동형 수소제거장치'로 불리는 'PAR(Passive Auto-catalytic Recombiner)'가 설치되기 시작했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의 격납 건물 내부에서 가득찬 수소가 폭발해 지붕이 완전히 날아간 처참한 광경이 전 세계에 생중계된 뒤로,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 제품은 기존의 원전에 설치돼 수소를 제거하는 이른바 '수소 점화기'와는 별도로 설치됐습니다. 수소 점화기는 후쿠시마 사태처럼 정전이 일어났을 경우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원이 없이도 가동하는 수소 제거장치가 필요했던 겁니다.

 이 PAR(업계에서는 흔히 '파'라고도 읽습니다)는 촉매 반응을 이용해 수소와 공기를 결합시켜 발생하는 열에너지의 대류 원리로 작동하는 무전원 수소제거장치입니다. 만약 원전에 전력 공급이 차단됐을 경우에는 원전 격납건물 안에서 수소를 제거해 폭발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이 PAR 뿐입니다. 따라서 이를 원전의 단순 보조장치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PAR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모든 원전에 장착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약 11기에 설치됐고, 앞으로 건설되는 원전에는 순차적으로 설치 적용될 예정입니다. 올 연말 가동 예정이었다가 이제는 잇따른 비리로 그마저도 불확실해진 신고리 3, 4호기 원전도 그 대상입니다.
 
 신고리 3, 4호기는 기존 원전과 달리 보다 높은 단계의 내진설계가 적용됩니다. 기존 원전의 경우 0.2g (여기서 g는 중력가속도입니다), 지진 규모로 따지면 약 6.5의 지진에 견딜 수 있게 건설된 반면, 신고리 3, 4호기는 0.3g의 중력 가속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습니다. 지진 규모로는 약 6.9에 해당합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지진으로 인해 1초에 3m를 움직이는 수평방향의 가속도가 가해져도 원전 건물이나 내부 장비의 성능에 이상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규모 6.9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경우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강화된 기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한티이피

 문제는 검증업체인 새한TEP가, 위에서 설명한 중요성을 갖는 PAR가 강화된 내진 성능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갖춘 것처럼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내부 조사 결과, 새한TEP는 PAR의 내진성능 시험을 종전 기준처럼 0.2g에서 수행하고도 0.3g에서 성공한 것처럼 성적서의 데이터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내진설계는 지금까지 위조가 밝혀진 제어 케이블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안전에 직결되는 항목입니다. 만약 이런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제품이 원전에 들어갈 경우 원전 전체의 내진 성능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 제품이 기준에 어긋나더라도 원전 전체 격납 건물, 보조건물, 터빈 건물에 들어가 있는 굵직한 보조 기기, 주기기를 전부 다 다시 봐야 하는 입장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아무리 건물이 규모 6.9의 지진에 견디도록 지어진들, 내부 장비와 부품이 그 지진에 견디지 못한다면 그 원전이 6.9의 지진에 버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라도 구멍이 난다면 나머지 공들인 장비와 부품의 성능마저 한꺼번에 저하되는 셈입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이번 위조가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신고리 3, 4호기 뿐만 아니라 현재 건설 중이거나 예정인 다른 원전은 모두 0.3g 기준으로 내진설계가 이뤄집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잇딴 비리로 미뤄 비슷한 다른 부품에도 내진설계 성적서가 위조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수십 년전부터 내려온 원전 업계의 구조적인 부패가 영세 검증업체들로 하여금 위조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떠다 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수조 원이 넘는 원전 공사가 발주되면 원청업체에서 제1하청, 제2하청... 사다리식으로 내려오는 하도급 체계, 그 속에서 검증사업도 한 고리를 이뤄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돈 몇 억원짜리 검증사업에 제대로 된 계측장비를 사용해서 검증을 하는 것이 무리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번 내진설계의 기준인 0.3g 가속도 실험은 1초에 3m를 수평이동하는 진동대(스프링 포함)와 정밀 계측 장비가 필요합니다. 또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숙련된 전공 인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영세 검증업체가 이런 시설과 인력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검증을 수행해 온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국내 공인 검증기관의 눈을 피해 캐나다 같은 외국의 더 영세한 업체에 시험을 대행시킨 뒤 제대로 나온 결과만을 골라 성적서를 조작한 정황까지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원전 기술의 신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신고리 3, 4호기와 똑같은 사양으로 UAE(아랍에미리트)에 수출되는 바라카 원전은 업계에서 신고리 원전의 '참조 원전'이라고 불립니다. 내부 장비와 규격이 신고리 3, 4호기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그런데 공사가 한창인 이 UAE 원전에도 이미 불량부품이 납품됐고, 한국의 원전 비리가 줄줄이 터져나오면서 이제는 미국의 한 원전 부품업체가 UAE 측에 다시 납품 제의를 했다는 소식입니다. '한국 원전 기술을 이제는 믿을 수 없으니 우리 제품으로 갈아타라'는 말이지요. 한국 원전의 신뢰성이 추락한 틈을 타 일본, 미국, 프랑스 등이 다시 치고 들어올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참담합니다.

 신고리 3, 4호기에 납품될 PAR의 시험성적서를 조작한 새한TEP는 결국 납품에 실패했고, 현재는 다른 업체에서 대신 PAR를 납품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험성적서 위조 비리가 더 터져 나올까요?
 
 이제 학계에서는 23개 원전을 혼자서 관리하는 독과점 체제의 한국수력원자력을 해체하자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상호 감시와 내부 경쟁이 없는 상황에서 안이하게 원전을 이끌어 온 주범이 바로 한수원이라는 지적입니다. 현재 여러 개의 민간 사업자로 분할된 화력발전처럼, 앞으로 원자력발전도 한수원을 발전적으로 해체해 지역별 사업자로 분리시켜 거듭나게 되면 지금과 같은 비리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극약 처방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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