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보면 다시 보고 싶을 만한 미남도 아니고 식스팩이 잘 조각된 복근을 자랑하는 훈훈한 몸매의 사나이도 아닌 싸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콧물을 흘리며 펑펑 눈물을 쏟는 모습마저도 감동으로 전해질 정도로.
싸이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었던 바로 그 무대가 13일 오후 6시 50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해프닝’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졌다. 싸이의 국내 무대에 목말랐던, 무려 5만여 관객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싸이의 지금이 이토록 빛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남스타일’과 ‘말춤’으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한국 가요계 역사를 새로 쓴 싸이인 만큼 이번 앨범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싸이의 새 앨범에 대한 기대감은 12일 공개한 신곡 ‘젠틀맨’이 국내 전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소위 말하는 ‘지붕킥’을 30회 이상 했다는 사실로 대신하기로 하겠다.(지붕킥이란: 음원 차트 멜론에서는 음원 판매량을 실시간 그래프로 보여주는데 그 그래프의 최고점을 경신하는 것. 30회 이상 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싸이 자신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강남스타일’과 같은 성공은 두 번은 어려운 전세계적인 성공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싸이는 그 말을 듣고도 웃는다.
공연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싸이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이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이 일을 12년째 하고 있다. 해외에서 한 곡이 인기를 얻고 다음 곡이 반응이 좋지 않아 접는다 한들 그게 내 가수 인생에 있어 단 한 번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공연 중에는 “이렇게 많은 여러분들이 내 음악을 기다려주고 지금 이토록 크나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젠틀맨’이 망해도 상관없다”고 밝혔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렇기에 결과가 어떻든 후회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 싸이의 현재를 응원하는 관객들은 공연 시작 전부터 ‘젠틀맨’을 부르며 싸이가 등장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등장한 싸이는 이후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마치 소극장에서 공연이 펼쳐지듯 팬들과 눈을 맞추고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잊지 못할 ‘해프닝’을 만들었다.
‘라잇 나우’‘연예인’‘예술이야’로 공연의 포문을 연 싸이는 “진짜 많이 왔다. 분위기 끝내준다”라며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 큰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LED 화면과 적재적소에 터지는 폭죽, 그리고 돌출 무대를 통해 관객과 가까이서 만나는 싸이의 모습에 공연장의 열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여기에 밤이 깊어지며 어둠이 내리자 더욱 아름답게 빛이 나기 시작하는 화이트 스틱의 물결은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경기장에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자 무대 위에 펼쳐낸 야광쇼도 화려함을 더했다. 싸이 공연의 백미인 여장쇼 순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비욘세로 변신한 싸이는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점프 슈트를 입고 과감 없는 춤사위를 뽐냈다.
같은 소속사 식구인 이하이와 함께한 ‘어땠을까’에서는 무르익는 봄날의 이 밤을 아련함으로 채웠다. 이렇게 계속 아련함으로 갈 싸이가 아니었다. 싸이는 ‘새’‘오늘밤새’‘내 눈에는’‘나 이런 사람이야’‘흔들어주세요’‘설레인다’ 등 히트곡을 연달아 선보였다.
이하이 뿐만 아니라 2NE1, 지드래곤 등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의 훈훈함도 볼만했다. 2NE1과 지드래곤은 마치 자신의 공연인 듯 최선을 다하는 무대를 선사했다.
싸이는 ‘낙원’을 부르면서는 와이어를 타고 공연장을 훨훨 날아다녔다. 지금까지 달려온 공연도 열광의 도가니였지만 이렇게 훨훨 날아다니는 싸이의 모습은 가슴까지 뻥 뚫리는 자유로움을 안겨주며 공연을 절정으로 이끌었다. 자신에게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이,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이 순간이 감격스러웠는지 싸이는 ‘거위의 꿈’을 부르며 끝내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참고 참았다가 끝내 떨어지는 굵은 눈물방울은 보는 이들의 가슴마저 울렸다.
이 절정은 ‘젠틀맨’과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관객들의 환호성은 더욱 커졌고 ‘떼창’이 이어졌다. 싸이의 몸짓은 더욱 격렬해졌다.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될수록 그는 더욱 빛났다.
싸이는 한국어로 된 노래 ‘젠틀맨’으로 다시 해외로 나가 활동을 시작한다. 그가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을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야, 죽어도 상관없는 지금이야, 심장은 터질 듯이 예술이야”(싸이 ‘예술이야’ 중)라는 기분으로 사는 싸이,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싸이가 어떤 성적을 거두든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