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수목드라마스페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 11회에서 조무철(김태우 분)이 누나 조박사에게 상처를 치료받으며 한 말이다. 그리고 29일 15회분에서는 이 말을 지키려는 듯 칼을 맞는 순간까지 폼생폼사였다.
조무철은 칼을 맞기 직전 오수와 만났다. 위급한 상황에 빠진 오영 때문에 정신없는 오수에게 “보기 좋았어. 네가 하는 사랑이… 정말 이 세상에 사랑이란 게 있는지 알고 싶었는데 정말 사랑이 있네. 너랑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손을 잡으며 “가”라고 내뱉는 모습은 비록 혈색이 좋지 않은 얼굴에, 숨이 가뿐 말투였지만 진정으로 남자다웠다.
사실 그동안 조무철은 주인공 오수(조인성 분)를 사정없이 괴롭혀왔다. 그것도 목숨 줄을 가지고… 첫 회부터 악역 본색은 강렬했다. 오수에게 진보라(서효림 분)가 100일 안에 횡령한 78억원을 대신 갚으라고 협박하며 본보기로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오수의 배를 칼로 찔렀다. 이에 오수는 PL그룹 상속녀 오영(송혜교 분)의 가짜 오빠 행세를 시작하게 될 만큼 조무철은 공포감을 부르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겨울’의 회가 거듭될수록 조무철은 그저 그런 단순한 악역이 아니었다. 가족을 생활고에서 지키기 위해 깡패가 됐고, 오수 일행을 김사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그들을 대신 괴롭혔다.
이는 15회 조무철 부하의 입을 통해 확인이 됐다. “오수, 희선(정은지 분), 진성(김범 분)이는 형님 마음 모릅니다. 형님이 지금까지 온갖 욕 들어가며 자기들 곁에 없었다면 김사장 손에 벌써 죽었을 텐데. 이렇게라도 자기들 지켜준 거…”라는 말을 해 조무철이 오수 일행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 모두 조무철의 폼에 속고 있었던 것이다. 한쪽 눈 위에 깊이 팬 상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위협적으로 낮은 목소리… 악명 높은 조직폭력배 조무철은 사실 속 깊은, 정 많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조무철은 폐암으로 인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이마저도 드라마 중후반부에 공개됐다) 하지만 조박사의 간청에도 치료는 거부한 채 폼을 지키며 김사장의 사주(오수를 죽이라는 요구)를 들어주는 척 하며 오수에게 시간을 벌어주며 도왔던 것이다. 진성이 대놓고 의리남이라면 조무철은 숨은 그림자 같은 의리남이다.
조무철은 자신이 죽는 날을 알았는지 첫사랑 문희주의 동생인 문희선을 찾아 이런 말을 남겼다. “나라도 날 이해하려고, 너도 세상도 날 다 이해 못하니까 나라도 이해하겠다고. (중략) 나도 내 딴엔 산다고 산거야. 열여섯 어린 나이에 엄마, 아버지 동생들 여덟 명의 생계가 내 손 안에 있었어. 웃는 게 예뻤던 네 언니는 울면서 내 앞에서 죽었고 괜찮다가 안 되더라고.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 안 살겠지. 근데 어차피 난 이게 끝이고. 세상 사람들이 다 날 욕해도 난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거 미련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해주고 싶다. 나라도 날 이해 안하면 너무 안됐잖아. 내가”라고 말하며 하얀 국화꽃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의 말처럼 조무철은 아무도 자신을 이해시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악독한 모습을 보여줄지언정, 자신의 상황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폼만을 지켰으니… 그 누구도 조무철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으리라. 이제 죽어가는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당신이 지향하는 바를 이뤘다고, 폼생폼사 인생에 딱 맞아 떨어지는 삶이었다고, 그리고 이제 오수가 그런 당신을 잊지 못할 것도….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손재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