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태풍', 2008년 '1724 기방난동사건', '하녀'(2010)에 이르기까지 작품간 공백을 길게 가지면서 충무로에서 그의 자리는 다른 30대 배우들의 몫이 되버렸다.
한동안 충무로를 떠나 있었던 이정재는 긴 휴식을 끝내고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았다. 2010년 영화 '하녀'로 스크린에 복귀하면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고, 지난해에는 '도둑들'로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새롭게 쓰는데 일조했다. 더불어 올해는 '신세계'라는 역작을 만나 자신의 이름을 다시금 관객들의 가슴에 아로새겼다.
'신세계'는 국내 최대 범죄조직에 잠입한 형사와 그를 둘러싼 경찰, 범죄조직을 배경으로 세 남자 사이의 음모와 배신, 의리를 그린 영화다. 이 작품에서 이정재는 범죄조직에 위장 잠입하는 형사 '이자성'으로 분했다. 영화 중반부까지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다가 후반부 들어 내면의 욕망을 표출하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최민식 선배로부터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민식, 황정민과 같은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찍을 기회는 흔치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요즘에 안 나왔던 풍의 영화라 신선한 맛이 느껴졌다. 관객들에게 볼거리와 재미를 선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정재가 맡은 이자성은 경찰도 아니고, 조직원이라고도 할 수 없는 한마디로 뚜렷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표류하는 인물이다. 주어진 임무와 소속된 집단 속의 인간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기에 심리 연기에 집중해야 했다.
"자성이라는 인물은 어디서도 편하게 숨을 쉴 수 없다. 양 집단에 소속돼 있지만, 실상 마음 편히 속내를 터놓을 확실한 내 편이 없는 인물이다. 영화 중반까지 인물의 심리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해 답답한 면도 있었지만, 최대한 자성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며 연기하려고 했다"
쉼 없이 감정을 분출하며 독특한 캐릭터를 부각하는 황정민과 힘을 잔뜩 빼고 연륜으로 연기하는 최민식에 비해 이정재의 연기는 양 극단의 중간지점에 있다. 그 때문에 초중반까지는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정청에게 신분이 드러나는 위기에 처하는 장면에서부터 이정재의 연기력은 제대로 빛을 발한다.
"그 장면을 준비하면서도 '이 신은 정말 잘 찍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가졌다. 그래서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를 두고 끊임없이 상의했다. 다행히 스태프들이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잘 조성해줬고, 몇 테이크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신 중 하나다"
'신세계'가 개봉 2주 만에 전국 28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속편에 관 이야기도 끊임없이 나오는 상황이다. 영화 후반부 정청과 이자성의 6년 전 모습이 등장하면서 프리퀄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도 고조된 상태다.
이에 대해 이정재는 "영화를 찍고 나서 '자성'이라는 캐릭터에 연민이 많이 생겼다. 마지막에 나왔던 6년 전 자성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과거가 좀 더 궁금해졌다. 그 느낌을 변주해서 잘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속편이 될 프리퀄 출연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정재는 최근 몇 년간 선구안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다작하지도 않았지만,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작품들도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예전에는 감독, 시나리오, 제작사 등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야 작품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작품을 까다롭게 고르며 내가 꼭 맞는 작품만을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이 바보 같더라. '하녀' 때부터 작품 수를 많이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심경의 변화 때문인지 이정재는 2년 전 진행하던 사업도 모두 정리했다. 이제는 연기에 전념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지난해 '도둑들'에 이어 올해는 '신세계' 더불어 사극 '관상'도 선보일 계획이다.
"캐릭터만 잘살고, 내가 좀 잘할 수만 있으면 어떤 장르든 무슨 이야기든 도전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많이 하려고 생각하다 보니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긍정적으로 보이더라. 이런 시각으로 일하다 보니 부담도 덜하고, 선구안도 좋아지면서 좋은 캐릭터를 만나게 되는 거 같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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