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판세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체로 이명박 후보가 30% 대의 지지율을, 박 후보가 20% 중반을 기록하고 있었지요. 한나라당은 1, 2위 두 명의 대선 주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 2007년 6월 11일 경선 레이스에 돌입했습니다.
이에 반해 당시 여권 후보는 어느 누구도 10%의 벽을 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난감했겠군요. 당시 여권은 열리우리당 탈당 사태가 계속되고 있었고,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탈당 대열에 합류합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이미 3월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범여권에 합류한 상태였고요. 한명숙, 이해찬 친노 주자들도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여권은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의 통합신당과 민주당이 2007년 6월 27일 합당하기에 이릅니다. 불과 대선을 6개월 앞둔 상황에서 힘을 합치지 않으면 대선 승리는 물건너간다는 위기감에 휩싸였습니다.
시계를 다시 좀 더 앞으로 돌려 볼까요. 2007년 1월로 말이죠. 당시 고건 전 총리가 전격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합니다. 고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바탕으로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했습니다. 2005년 하반기까지 압도적인 지지율 1위를 달렸습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청계천 효과'를 내세우며 치고 올라오긴 했지만, 그래도 고 전 총리는 2006년 6월까지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렇다 할 대선 주자가 없던 열린우리당은 고 전 총리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고 전 총리를 영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당내에서 강하게 제기됐고요. 고 전 총리에만 매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바라보고 있는 현재 민주통합당의 상황과 닮은 측면이 있군요.
'대선 타임머신'은 이제 현재로 돌아 옵니다. 민주통합당은 최근 안철수 교수를 상대로 대선 출마 입장을 밝히라고 재촉하고 있어요. 이해찬 대표는 민주통합당이 다음달 25일까지 당내 대선 후보 경선 규칙을 확정할 것이라면서, 안 교수에게 이 때까지 대선 경선에 참여할지 결단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안 교수를 빨리 끌어 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고건 트라우마'를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첫째, 행여 안 교수가 고 전 총리처럼 대선 출마를 포기할 경우를 우려하는 겁니다. 안 교수와의 단일화를 통해 야권의 판을 키워야 되는 상황에서, 특히 대선 국면 막판에, 민주통합당에 대한 지지조차 표명하지 않고 주저앉으면 큰 일이라는 거죠.
둘째, 안 교수의 출마 선언 시점도 문제입니다. 민주통합당이 8월 중순쯤 당내 대선 경선을 시작하기 직전 또는 진행하고 있는 도중 안 교수가 출마 선언을 하는 경우입니다. 언론의 관심이 안 교수로 향하면서, 컨벤션 효과를 통한 흥행을 노리던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은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어쩌면 '마이너리그'로 전락할 수도 있는 거죠.
이상의 이유로 안 교수를 대선판으로 빨리 불러내긴 내야 하는데, 각론에서는 민주통합당 내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먼저 안 교수가 민주통합당에 입당한 뒤 당내 후보들과 경선을 치르자는 겁니다. 야권 대선 후보를 한 번에 선출하는 방안이니, 이른바 '원 샷' 경선이라고 합니다. 이해찬 대표와 우상호 최고위원, 그리고 대선주자 가운데는 김두관 경남지사와 정세균 상임 고문이 '원 샷' 경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안 교수가 '원 샷' 경선에 참여하기 힘들다면 민주통합당 후보를 먼저 선출한 뒤 2단계로 단일화를 하는 방안도 열어 두고 있습니다.
두 번째 방안은 안 교수의 입당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가설 정당(Paper Party)'을 만들어 안 교수와 민주통합당 대선 주자들을 대상으로 경선을 실시하자는 겁니다. 문성근 전 대표 대행은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들은 일시적으로 탈당해 안 교수와 함께 이 가설 정당에 입당해 경선을 치르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선출된 대선 후보는 다시 민주통합당에 입당하면 되는 겁니다. 이종걸 최고위원의 주장은 아예 민주통합당 전체가 가설정당에 들어가자는 겁니다. 안 교수도 세력을 규합한 뒤 이 가설정당에 들어가면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만 대선 후보들이 전국 순회 경선을 하면서 당원들을 상대로 합동 연설회도 하고,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박원순 후보와 민주통합당 박영선 후보는 선거법상 당이 다르기 때문에 단일화 경선을 하긴 했지만, 후보 선출 대회에서 정견 발표를 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주통합당 자강론'입니다. 나중에 단일화를 하든지 말든지 지금은 당 밖의 후보에 눈길을 보내긴 보다는 민주통합당 후보를 키워 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손학규 고문과 강기정 최고위원이 주로 주장하고 있는 방안입니다. 문재인 고문은 아직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있습니다. "안 교수와의 연대는 필요하다", "모바일 경선을 하면 안 교수가 특별히 불리하지 않다"고 밝힐 정도입니다.
안 교수는 이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내 놓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안 교수 측은 민주통합당 인사들의 이런 발언에 불쾌하다는 반응입니다. '안 교수는 아직 결정을 안 했는데, 왜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냐'며 발끈하고 있습니다. 안 교수의 언론 특보 역할을 맡고 있는 유민영 전 춘추관장이 민주당 일부 인사라고 지칭하며, "안 교수에 대한 상처내기를 하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반발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사실 안 교수가 서두를 이유는 없을 겁니다. 안 교수가 특별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는데도,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새누리당의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 양자 가상대결에서 오차 범위내에서 접전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거죠. 흔한 말로 몸이 단 쪽은 민주통합당이라는 판단일 겁니다.
하지만, 대선 출마 선언을 마냥 미루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다른 대선 주자들이 속속 출마 선언을 하고 국가 비전과 정책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안 교수의 침묵이 길어지면 안 교수에 대한 모호성이 증대하고 동시에 국민적 피로감도 커질 수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 교수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민주통합당과의 관계도 다른 국면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지겠죠. 올해 초만 해도 민주통합당은 안 교수에게 '러브 콜'을 보내는 사이였습니다. 안 교수가 민주통합당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인데도 미래의 협력 관계는 유지됐죠. 그러나 대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상황이 바뀔 수 있습니다. 안 교수는 민주통합당 대선 주자들과 협력자이면서도 경쟁자의 관계인데, 이제부터는 경쟁자 쪽으로 비중이 점차 옮겨 가고 있는 겁니다. 특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안 교수의 대선 행보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면 양측은 긴장 관계로 흐름이 바뀔 가능성이 점차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안 교수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할지, 민주통합당은 속을 태우면서 예의 주시할 수 밖에 없는 거죠.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