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어렵다고 곳곳에서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지만 예외인 업종이 있다. 바로 은행권이다. 지난해 국내 은행권은 역대 최고의 호황을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 KB, 우리금융, 기업, 외환, 하나금융지주 등 6개 은행이 순이익 1조 원을 넘었다. 시중은행이 6곳이나 1조 원 순이익 돌파를 동시에 달성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신한금융은 3조 원을 넘는 순이익을 올렸다. 삼성전자, 현대차, SK, 포스코, 기아차, 현대중공업에 이어 순익 7위에 오를 전망이다. 제조업이 아닌 금융권에서 순이익이 3조 원을 넘은 것도 역시 사상 최초다. 물론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도 받았지만 2008년 우리은행, 2009년 하나은행이 순익 2천억 원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세다.
갑자기 은행들의 이익규모가 급성장한 이유는 뭘까. 신 사업도 아니고 해외영업을 강화해서 외국 돈을 벌어온 것도 아니다. 뭘로 돈을 벌었나, 들여다봤더니 '예대마진'과 '수수료'가 대부분이다. 은행이 쉽게 돈을 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해 저금리 기조로 예금금리는 내렸는데, 반대로 대출금리는 올리면서 이 두 가지의 차, 이른바 예대마진이 늘었다. 2009년 2.68%포인트였던 은행 예대마진은 2010년 2.85%포인트로 뛰어오르더니 지난해 2.96%포인트로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줄인다며 금융당국이 경고를 하자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높이는 방법을 택해 예대금리차가 더 벌어지게 됐다. 가계빚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서민들은 이자율이 조금만 높아져도 감당해야 할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그만큼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소비 여력이 감소해 내수부진으로 이어지는 단초도 제공한다.
커지는 예대마진으로 은행 이자 수익이 전체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나라는 80%를 넘어서고 있다. 선진국 은행들이 50%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수익의 예대마진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뜻이다.
또 하나하나로 보면 푼돈 같지만 수수료로도 쏠쏠한 수입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18개 국내은행들 수수료 관련 이익은 4조9000억 원으로 1년 새 11.4%나 증가했다. 지난해 카드 수수료와 함께 은행 수수료도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일부 수수료 낮추긴 했지만 엄청난 액수를 수수료로 여전히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영업을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폄하하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대출영업도 영업이고, 노력을 들여서 한 일이라는 것도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다. 글로벌 IB들이 파생상품이다 뭐다 줄줄이 추락할 때 역시 은행은 본연의 상업은행 업무에 충실한 것이 기본을 지키는 것이고 위험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할 땐 언제고 지금 본연에 충실하니까 또 비판한다며 은행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편중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점, 그러니까 경쟁이 거의 없이 예대마진과 수수료 부분에 수익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모양새는 글로벌 금융그룹을 지향한다는 그들의 '비전' '목표'와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또 안전 위주의 대출 관행이 너무 노골화되면서 은행의 사회적 역할,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의 기업대출을 보면 대기업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말에 11%였던 것이 지난해 말 21.3%로 급격히 늘어났다. 2007년 1월말 38조 원이었던 대기업 대출이 지난해 11월말 125조 원으로 늘어나, 5년도 채 안되 3배가 넘게 급증한 것이다. 경기가 둔화할수록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다 보니 대기업보다는 신용도가 떨어지는 중소기업 대출을 더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그렇게 위험에 민감하게 대비하는 은행들, 사상 최대 순이익을 올린 후 금융당국이 너무 배당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추후 닥칠 수 있는 위기에 대비해 사내 유보나 충당금 적립을 권고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 어려울 때 100조원 넘는 공적 자금을 지원받은 금융권. 물론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기업이지만 공공성도 무시할 수 없는 업종이다. 그런 측면에서 은행들은 왜 일제히 언론들이 은행권 사상 최대 순이익 소식을 '나 홀로 호황?' '박수 받지 못하는' 등의 수식어를 붙여 보도했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