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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박희태 캠프 어떻게 움직였나

2008년 박희태 캠프 어떻게 움직였나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2008년 당시 '박희태 캠프'의 구성 면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승덕 의원에 의해 300만 원 돈 봉투 의혹이 제기됐고, 서울지역 당협 사무국장에게 50만 원 전달 지시 의혹이 불거지면서 '박희태 캠프'의 핵심 인사들에 대한 직·간접적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 `돈봉투'가 오갔다면 캠프 내 극소수 인사만이 그 규모와 출처·전달처 등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캠프의 '실무 3인방'으로는 현재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는 김효재 의원, 안병용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 등이 꼽힌다.

당시 김효재 의원과 안병용 위원장이 의원과 원외위원장에 대한 '지지그룹' 구축 역할을 맡았다는 후문이다.

전대 초반의 분위기는 '박희태 대세론'이었지만, 탄탄한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한 정몽준 후보의 추격이 거세자 친이(친이명박)계 중심의 조직활동을 강화했다는 게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 2007년 이명박 경선 선대위 시절 '선대위원장-언론특보'로서 박희태 후보와 호흡을 맞춘 김효재 수석은 일찌감치 캠프에 합류, 실무준비단 단장 역할은 물론 실무 총괄을 맡았다.

김효재 수석은 18대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이었지만, 적지않은 나이(당시 56세) 때문에 의원들을 '리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 수석은 전대 직후 박희태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또한 검찰이 압수수색을 실시한 안병용 위원장은 친이계를 대표하는 원외위원장이다. 이재오 의원의 측근으로도 분류된다.

과거 '꼬마 민주당' 당료로 정치를 시작한 안 위원장은 1997년 대선 당시 다른 `꼬마 민주당' 인사들과 함께 한나라당에 합류했으며, 2008년 18대 총선 때 은평갑에 출마했으나 낙마했다.

안 위원장은 친이계로서 2008년 전대 당시 '박희태 캠프'에 참여, 원외위원장 네트워크 구축에 일정부분 역할을 했다. 그는 친이 원외위원장 23명의 모임인 '거해'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같이 원외 조직을 담당한 안 위원장은 이번 돈 동투 사건과 관련해 서울지역 구의원들에게 `서울지역 30개 당협 사무국장에게 50만 원씩을 나눠주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따라서 안 위원장이 언급한 돈이 고승덕 의원이 받은 300만 원과 출처가 같은 자금인지 궁금증이 증폭된다.

또한 안 위원장은 2010년 전대 때도 친이계인 안상수 후보를 도왔고, '안상수 체제' 출범 이후 핵심 당직인 제2사무부총장 물망에 올랐지만 당내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이와 함께 당시 박희태 후보의 보좌그룹도 눈길을 끈다. 전날 검찰 조사를 받은 고명진 보좌관은 17대 국회 당시 박희태 의원 비서였으며, 현재는 한나라당 모 의원의 보좌관으로 있다.

하지만 고명진 보좌관은 캠프 내에서 '심부름' 역할만 했을 것이라는 게 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신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진다. 박희태 국회의장과 경남 남해 동향인 조 수석은 1989년 국회에 들어와 20년 넘게 박 의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당 관계자는 "조 수석은 캠프 내에서 재정·총무 역할을 맡았다"며 "사실상 박희태 의장의 집사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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