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에서 하루 아침에 성범죄 피의자로 전락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IMF 총재의 첫 공판이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아직 수개월 동안 진행돼야 할 사안이어서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스트로스-칸이 유죄일지 무죄일지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만,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주 다양해서 그 만큼 많은 시나리오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돈과 권력, 섹스에 인종 문제까지 버무려져서 대중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이야기 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어떤 요소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훌륭한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돈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에서는 부자들의 세상을 엿보는 재미를 부추깁니다. 프랑스 파리 시내 한 복판에 최고급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IMF 총재가 미국 워싱턴의 호화 저택에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뉴욕의 최고급 호텔 스위트 룸에 묵으면서 사고를 쳤다는 것 자체가 흥미거리였습니다.
또 재판을 위해 한 달에 5만 달러인 뉴욕 부촌의 주택을 임대하고 있고, 24시간 감시를 위한 장비와 인력에도 매달 20만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는 것도 모두 관심거리입니다. 초호화 변호인단 구성을 보면서는, 자신의 아내와 남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1995년 무죄 평결을 받은 O J 심슨 사건이 재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까지 있습니다.
권력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임을 위한 그럴싸한 음모론이 등장합니다. 사르코지가 내년 4월 치러질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상대였던 스트로스-칸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낸 음모라는 것입니다. 사건이 벌어진 호텔이 프랑스계인 소피텔이었다는 것에서부터 뉴욕시의 경찰 총책임자 레이 켈리가 사르코지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여서, 사르코지가 내무장관 시절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받았다는 사실까지 등장합니다.
섹스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 정치인을 비롯한 권력자의 사생활에 대한 프랑스의 관대함이 빠지지 않고 얘기됩니다. 14년의 임기 내내 금기사항이었던 미테랑 전 대통령의 숨겨놓은 딸 ‘마자린’의 스토리를 비롯해, 지스카르 데스탱과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알려지지 않은 여자 관계 등이 이번 사태의 배경이라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위기를 겪었던 스트로스-칸의 병적인 여성 편력 또한 빠질 수 없는 소재였죠.
인종 문제 역시 흥미로운 얘기 거리를 제공합니다. 피해자가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여성이라는 점은 미국 사회의 기층에 대한 상징이죠. 스트로스-칸과 부인 안 생클레어는 유태인입니다. 현재 서구 사회의 거대한 막후 권력계층이고요. 스트로스-칸의 변호를 맡은 벤저민 브라프만 역시 저명한 유태계 변호사입니다. 스트로스-칸의 공판 당일 호텔 객실 종업원들이 시위를 벌였는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렇게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스트로스-칸 사태의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모든 언론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겠죠.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아직도 프랑스 사람들의 57%가 이 사태의 배경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를 미리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스트로스-칸이 유죄 평결을 받게 되면 이 음모론은 어떻게 될까요? 어쩔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져서 사라질지, 아니면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고 다이애너비의 경우처럼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음모론이 될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미국의 사법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궁금증은 더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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