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토크] 지하철을 그리는 사람

도시의 삶은 외롭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채로운 색깔을 내지만 각각의 개인은 고립되어 있습니다. 서용선 작가의 그림이 투박하고 거칠게 보이는 이유는 도시의 삶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지하철을 탄 사람들의 얼굴은 알아보기 힘듭니다. 우리도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지만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지하철은 도시 생활의 고립된 특성을 가장 잘 나타냅니다. 어느 한 점에서 목표로 하는 곳까의 경험이 이어지지가 않습니다. 작가의 시선이 지하철 안에 자주 머무는 이유는 도시인의 방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까지 이동할 때 여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산과 물과 길을 따라 경험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이 바로 여정입니다. 여정을 따라가면 꾸불꾸불 선을 그립니다.

하지만 편리함과 빠름을 가져다준 현대적인 교통수단들은 여정을 오랫동안 경험할 수 없습니다. 특히 지하철은 이런 여정이 거의 없습니다. 출발하는 곳과 도착하는 곳이 있지만 중간 과정은 모두 지하철 안의 닫힌 공간입니다. 선을 그리던 움직임이 점과 점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이 외로운 이유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곡선이 아닌 점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서용선 작가는 세계 여러 도시를 경험하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느 도시건 지하철이 있고 도시인의 삶은 각박합니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길을 걸으며 매일매일 인사할 수 있는 동네 사람들은 없습니다. 역에서 가까울수록 집이 비싼 것을 보면 이동하는 과정이 빨라지기만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도시인의 생활을 굉장히 '도시적'으로 만든 주범인 지하철은 출생지인 도시를 닮아 있습니다. 다른 도시를 갈 때 마다 지하철의 성격은 조금씩 달라지는 게 그 때문입니다. 지하철을 만든 사람들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 언제 태어났는지에 따라서도 성격이 틀려 집니다. 미국 뉴욕 지하철에서는 매년 속옷만 입고 지하철을 타는 행사가 있다고 하는데요. 도시 속에서 가벼운 일탈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이런 시도들은, 도시를 투박하게 만드는 공간을 다르게 바꿔보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거꾸로 해석해보면 지하철이란 공간이 편리함의 정점이지만 항상 유쾌하고 행복한 공간은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요.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도시의 투박함을 가만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하철에서 만나면서 힐끗거리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편리함과 투박한 시선은 충분히 즐겼으니 도시의 삶을 행복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고민해야 할 시간입니다.

취재협조 - 학고재, 서용선 개인전 [시선의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