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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머니 죽이고도 큰 소리 치는 피의자

- 불쾌한 취재의 기억

[취재파일] 어머니 죽이고도 큰 소리 치는 피의자

어머니와 어머니의 전 남편을 회칼로 살해한 이 씨. 제가 만나 본 살인 피의자 중 가장 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보라는 말에 무려 20분 가까이 자기의 인생 역정을 떠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 불륜을 저지르고 집을 나갔고, 그 이후 자신과 동생은 고아원에 맡겨져 힘들게 살았으며, 어머니와 그녀의 전 남편이 사과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횡설수설의 결론은 결국 '자기도 피해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전 제가, 저도 물론 흉기를 휘둘러서 잘못은 했지만 저도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래서 전 (한숨) 그... 어머니로부터 야반도주 불륜을 저지르고 시골에 있을 때 불륜을 저질렀던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받아가지고 전화를 걸어서 양주에서 만났습니다. 

근데 그 사람은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하고 사과도 안 하고 오히려 떳떳한 표정으로 지가 잘했단 듯이 얘기를 해서 또 흉기를 휘두르게 됐습니다. 

저는, 진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도 피해자고 그 어머니와 그 아저씨가 저한테 사과만 하고 절 따뜻하게 맞아줬으면 그런 불상사는 절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절 낳아주신 어머닌데 제가 그렇게 칼질을 했겠습니까?"

과연 그럴까요? 경찰이 조사한 범행 경위를 다시 짚어 보겠습니다.

8일 오전 11시 44분 이 씨는 지하철 5호선 방화역에 내렸습니다.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찾아낸 친어머니 최모 씨의 집에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점퍼 주머니 속에는 칼날 길이 21cm의 회칼이 준비돼 있었습니다. 3주 전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흉기였습니다.

27년만에 만난 어머니는 이 씨를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이 씨와 어머니는 거실에 밥상을 펴놓고 4시간여 동안 소주 2병을 마셨습니다. 어머니가 반 병, 이씨가 1병 반을 마셨습니다. 이씨의 평소 주량보다 반병 가량 많았습니다.

이 씨는 어머니가 "내 아들이 맞느냐?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 누가 시켜서 왔냐?"라고 하자 격분해 칼을 휘둘렀다고 말했습니다. 애초에 어머니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머니의 전 남편도 불륜 사실에 대해 사과만 했더라도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

범행 경위를 찬찬히 살펴보면 이씨의 주장이 신빙성이 낮다는 점을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사실은 '흉기'를 사전에 준비했다는 겁니다. 어머니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면 왜 '칼날 길이 21cm짜리 회 칼'을 점퍼에 넣고 갔느냐고 제가 물었습니다. "원래 넣고 다녔다"는 것이 이씨의 대답이었습니다.

세상에 누가 '사시미칼'을 원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느냐고 하자 잠시 당황하다 말을 바꿉니다. "사실 어머니는 죽일 생각이 없었고, 불륜 상대였던 아저씨를 죽일 생각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어떻게든 어머니 살해 의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계획된' 존속 살해가 다른 범죄 보다 훨씬 처벌이 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걸까요?

어머니의 불륜과 가출 때문에 인생이 불행해졌다는 것, 아마 사실일 것입니다. 실제로 어린 시절 부모님께 버림 받은 기억 때문에 잔혹한 살인마가 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 1999년 9명을 살해하고 9명을 다치게한 연쇄 살인범 정두영도 3살과 7살, 모두 두 차례에 걸쳐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기억이 범죄 성향의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됩니다.

그러나 그 아픈 기억이 '어머니를 살해한 범죄'를 정당화 해 줄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아직 어머니의 시신이 장례식장을 빠져나가지도 않는 시점에서 "나도 피해자다! 억울하다!"라고 기자들 앞에서 당당히 주장하는 이 씨의 모습은 그저 황당할 뿐입니다. 그 이야기를 20분이나 듣고 있어야 했던 어제 리포트, 참으로 드물게 불쾌했던 취재의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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