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시각으로 8일 오후 CNN이 보도한 한국 국회의 모습입니다. 예산안 처리를 두고 한국 국회의원들이 밀어제치는 드잡이식 정치를 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비슷한 시각 백악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의미있는 법안에 서명을 했습니다.흑인 농민들과 아메리칸 인디언들에 대한 지난 시절의 차별을 지금이라도 미국 정부가 인정하고 배상하는 내용의 법안이었습니다. 45억달러가 필요한 법안인데요, 오바마 대통령은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여성과 히스패닉 농민들에 대한 배상문제도 남아있다."고 담담히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 자신 소수자 출신이다 보니 감회가 남다를텐데, 조금은 억누르는 인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부유층에 대한 세금감면 조치를 더 연장하느냐 하는 현 미국 정치권의 최대 쟁점때문이었습니다. 언론 보도를 유심히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오바마 대통령은 며칠 전 야당인 공화당 지도부와 직접 담판을 짓고 타협안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달 말로 종료되는 부유층 감세조치를 2년 더 연장한다. 대신 실업자들에 대한 사회보장도 13개월 더 연장한다."는 내용입니다. 부유층을 포함한 모든 계층에 대한 감세조치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도입돼 올해 말로 만료됩니다.
민주당은 "금융위기를 겪고 대책을 세우다 보니 정부 재정이 부족하다. 따라서 부유층에 대한 감세 조치는 중단하고 중산층에 대해서만 감세조치를 연장한다."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거기에 맞서 공화당은 "감세조치는 부유층을 포함한 모든 계층에 대해서 연장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법안 처리를 거부하겠다."고 맞서 자칫하면 아무런 결론없이 해를 넘기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 상황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중산층이었습니다. 정치권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면 자동으로 감세조치는 올해말로 중단되고, 그렇게 될 경우 내년부터는 중산층의 세금 부담이 덩달아 커지게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 상황은 막아야겠다, 그리고 그 것이 대통령으로서 해야 될 일이라는 소신을 갖게 된 것이죠.
당연히 공화당은 환영하고 나섰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말로만 초당정치를 하자는 게 아니고 실제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대통령이 야당과 타협해서 절충안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고 평가받을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 안에서 생겼습니다. 대통령이 타협했다고 무조건 따를 수는 없는 일이라는 의원들이 생각보다 많은 거죠. 이들은 공화당의 반발로 중산층에 대해서만 감세를 연장한다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채 해를 넘겨도, 그 책임은 결과적으로 공화당이 저야 하는 거고, 피해를 보게 된 중산층은 당연히 민주당 편을 들어줄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을 오바마 대통령이 소홀히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스테니 호이어 하원 원내대표는 공개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기도 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다음달부터 공화당이 장악하게 되는 의회와 타협하는 새로운 길을 오바마 대통령이 선택했는데, 문제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변화를 변절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때 부시의 감세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던 오바마 대통령이 이렇게 말을 바꾼 것은 원칙을 저버린 것이고, 따라서 오바마가 당면하게 될 문제는 집토끼의 가출이다.'는 취지로 보도했습니다.
세상에, 대통령이 야당과 타협하고 여당은 대통령에 반기를 들고... 우리 정치에서는 꿈도 못 꿀 상황입니다. 설사 대통령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도 반여 정치를 생존의 모티브로 삼아야 하는 야당이 응할 리 없고, 대부분 숫적으로 여당이 우세인 상황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하겠다고 나선 대통령도 거의 없었죠. 어쨌든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전통 지지층을 대변하는 민주당 저변의 반발 움직임을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기자회견을 자청해 "나는 국민을 위해 옳은 일을 해야 하는 대통령이다.그리고 이 싸움은 금방 끝날 싸움이 아니라 길게 봐야 하는 싸움이다. 2년 뒤에 나는 분명히 부유층 감세조치의 폐지를 위해 싸울 것이다. 그 것은 약속한다. 정치적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고,나도 그 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정치놀음만 하다가는 미국과 미국 국민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해만 줄 수 있다. 이해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대통령의 진심을 이해하고 받아줘야 한다는 의원들도 상당수 있기 때문에 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대로 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물론 그 과정은 대단히 어렵겠지요. 한국 정치권에서 보지 못했던 상황이어서 저 개인적으로도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미국 대통령은 야당과도 직접 타협하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한국 정치권은 매년 이맘때면 예외없이 예산안을 놓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해머와 망치가 등장하더니 올해는 피까지 보였습니다. 국회의원 두 명은 권투선수처럼 주먹을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체격으로 보면 체급이 분명히 다른 만큼 공정한 대결은 아니었던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맨 위의 사진처럼 외신 보도에도 등장하게 되고, 논조도 비웃는 내용 일색으로 말이죠. 거기에 대응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도 어떤 면에서는 천편 일률적입니다. '국가 망신 한국 국회 이대로 좋은가' "G20으로 올린 체면,국회가 도루묵 만들었다''경제는 선진국,정치는 후진국'이라는 비판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정치적 싸움은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대안으로 나오는 기사 역시 10년전이나 1년전이나 이번이나 대동소이합니다. "선진국들은 의회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처벌한다. 주민들이 그런 의원들은 직접 소환해서 다음 선거에서는 절대 당선될 수 없도록 한다. 소수 야당이 다수 여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에 합법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행)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정치하게 마련돼 있다.우리 국회도 빨리 그런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거죠. 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가야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부끄러움을 알고 자신들을 엄격하게 징계하고 물리적 충돌이 아닌 논리전으로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의 정당성을 겨루는 방향으로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국민들이 눈 부릅뜨고 감시하고 국회의원들이 소름 돋을 정도로 강하게 압박해야 합니다.
다만 "으이구,망신스럽다. 저 게 무슨 국회의원이고 국민의 대표야"하는 식의 일방적인 매도와 비난은 제 얼굴에 침뱉기라는 생각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국민들도,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국회의원들을 뽑은 사람이 국민이고, 그런 국회의원들의 움직임을 생중계하듯 따라가고, 때로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도 한 게 언론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국회에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세력(그 것이 여든 야든 판단은 국민이 하게 되겠습니다만)이 원하는 게 바로 이런 정치 혐오 상황이라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물리적 충돌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 안에서 어떤 득실이 있을지를 여야 모두 판단한 뒤에 감행합니다.폭력이 난무하는 정치현장에 대한 매와 회초리는 그래서 여야 모두에게 가야 합니다. 다만 더 큰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는 정밀하게 가려봐야 합니다. 그런 대처가 우리 정치를 조금이나마 앞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지지 않고 무조건 욕만 한다면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죠..
제가 2년전 연수할 때 쓴 글이 있습니다만 이런 물리적 충돌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세력은 역설적으로 야당에 있다는 정치인들이 상당수 있습니다.야당이 "여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이 국민을 무시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분노하지만, 그럼에도 이 시간 이후로 물리적 저지는 하지 않겠다.그 것이 국민이 원하는 선진 정치의 모델"이라고 선언하고 꾸준히 실천한다면, 그래서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건 정권이 교체된 뒤에는 그 때 야당이 될 지금의 여당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문제는 지금 야당의 주도세력들이 '여당 반대 정치'와 '대치 정치'로 쉽게 얻을 수 있는 반사이익의 유혹을 쉽게 떨칠 수 없다는 점이 이 대안의 근본적인 문제점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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