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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호텔…긴박한 협상…전격 타결…

한미 FTA 추가협상 막전막후

한미 FTA 추가협상장 모습입니다. 워싱턴 DC 북쪽으로 50분 정도 올라가면 있는 메릴랜드주 컬럼비아라는 조그만 도시에 자리잡은 쉐라톤 호텔입니다. 이 호텔 오른쪽 날개동 중간에 위치했는데요, 보시는 것처럼 협상장이 넓지 않습니다.



한미 협상단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찍었습니다. 깨끗하게 현장을 정리하고 나갔더군요. 하긴 아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긴박한 협상상황이니 뒷정리가 필수였을 겁니다.



협상장 테이블에 있는 미국 무역대표부 USTR의 상징입니다.정부 청사에서 하는 협상은 아니지만 공신력이 있는 정부간 협상임을 보여주는 상징물입니다.

***
지난 한 주 저는 온전히 한미 FTA 추가협상 취재에 매달렸습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대표로 한 한국 대표단이 이 곳 시간으로 지난달 29일 미국에 도착해 그 다음날인 30일부터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협상 장소가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무역대표부가 아니라 워싱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조그만 호텔이었습니다.

결국 SBS 취재진도 협상이 끝날 때까지 그 곳에서 사흘 동안 머물렀는데 하룻밤 숙박비가 175달러 정도 하더군요. 싸지도, 그렇다고 아주 비싸지도 않은 호텔이었습니다. 이 곳으로 협상 장소를 정한 이유가 궁금했는데요, 미국 협상단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한국 대표단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사실 정부 청사에서 협상을 하면 다른 나라 협상단이 느끼는 부담감이 아주 크다. 지난달 G20 때 한국에서 있었던 1차 추가협상이 실패한 것도 어쩌면 협상 장소를 정부 청사로 정한 것 때문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었다. 그런 면을 배려한 미국 측이 이 곳으로 정한 것 같다. 워싱턴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고, 무엇보다 조용한 게 마음에 든다. 다만 미국측이 비슷한 거리에 있는 다른 호텔을 놔두고 왜 이 곳으로 정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관계자 말대로 호텔은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호텔 뒤로 넓지막한 호수도 있어서 풍광도 그럴 듯 했고요, 호텔에서 걸어서 3분 정도 거리에 요리를 제법 잘하는 일식당, 중식당, 이태리 식당이 있어서 음식 고생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협상장이 좁으면 특히 남자들이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자고로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낸 협상들은 대개 비좁은 곳에서 진행됐다. 이번 2차 추가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미리 전망하기도 하더군요.

이번 추가협상 특징 중 하나가 미국측이 우리를 모방한 게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다름 아닌 상황실이었습니다.

이전까지 미국측은 상황실 없이 무질서 속의 질서를 표방하면서 협상을 진행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한국 상황실을 모방해 호텔로비 2층에 널찍한 상황실을 만들어 놨더군요.

이 상황실에 가장 오래 있던 사람이 미국측 대표단중   마이클 프로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경제부보좌관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론 커크대표가 아닌 프로만이 사실상 미국 협상을 지휘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 건 결국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번 추가협상에 정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역시 중요한 것은 협상 자체였습니다. 무엇을 주고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미국측이나 우리측 모두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김종훈 대표단장이 하루에 한 두 번 정도는 흘러가는 상황에 대해서 개괄적인 얘기를 해줘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김 단장은 서울에서 있었던 1차 추가협상 때는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아 취재진들의 원성을 들었다는데, 이 곳에 와서는 비교적 친언론적인 태도를 보여줬습니다. 정부의 중요한 협상내용이 언론을 통해서 어떻게 보도되느냐에 따라 여론의 방향이 정해질 수 있다는 생각과 판단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김본부장은 취재진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담배를 피웠습니다. 저도 아직은 흡연중이라 제 담배를 나눠주기도 했고, 김본부장의 한국 담배를 제가 나눠 피우기도 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김본부장의 모습에서는 중차대한 협상을 책임지고 있는 고뇌가 배어나오더군요. 김본부장은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사실 한미 FTA 추가협상은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했어야 합니다. 우리측은 물론이고 미국측도 보면 다 새로운 사람들이 나와서 추가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3년 전 한미 정부가 체결한 기존 협정문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제가 만든 것을 제가 다시 고쳐야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고 또 힘듭니다. 어떤 현안이 제기되면 저는 그게 협정문에 들어간 자초지종을 다 아는데 저 쪽 사람들은 잘 모르니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고..."

이 와중에 김본부장은 협상 첫 날 밤, 마지막 협상을 마치고는 이런 얘기까지 했습니다.

"요즘 SNS인가 새로운 미디어가 한창이잖아요. 저는 그 자체는 반기는 편이지만 익명으로 의견들을 전달하는 데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외교부 젊은 직원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저의 생각을 피력했더니 이 친구들이 일제히 "익명이든 실명이든 그런 의견이 존재한다는 게 중요하고, 따라서 그 의견들을 정책이나 조직운영에 반영하면 되는 일"이라고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세대차이도 존재하고,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접근법도 차이가 있는 거죠. 앞으로 첨단 미디어들이 더 발전하면 할 수록 이런 간극도 더 벌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만 실수하면 협상이 깨지는 중요한 상황에서도 다른 얘기를 하는 여유를 보여주고, 또 그런 얘기를 하며 취재진의 관심도 조금 돌려보고, 자신의 머릿속을 정리하는 다목적 포석으로 여겨졌습니다.

김본부장과 취재진간 신경전도 매일 매일 계속됐습니다.

"언제쯤 결론이 날까요?" "그 걸 알면 제가 이렇게 있겠습니까? 그나 저나 미국 기자들처럼 한 두가지 딱 묻고 그만 돌아가세요. 깔끔하고 좋잖습니까?" "저희도 론 커크 미국 대표 만나면 그렇게 깔끔하게 하고 갑니다. 시간 끌지 않고요..." "이번 협상은 전체를 한꺼번에 다 타결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이 좁혀졌다, 이런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도 어느 게 좁혀졌는지는 좀 귀띔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의미 없다니까요.."

이런 신경전의 끝은 항상 담배였습니다.

항상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다니는 론 커크 대표는 협상장만 나서면 입을 꽉 다물었습니다. 이틀 째부터는 아예 기자들의 질문에 정답을 정해놓고 그 말만 반복하더군요. "We are working hard."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그런 론 커크 대표가 말을 많이 한 게 둘째 날 저녁이었습니다. 상황실앞의 로비 텔레비젼에서 미국 프로농구 경기가 방송되고 있었는데요, 세 차례나 밖에 나와서 5분 정도씩 들여다 보고 다시 상황실에 들어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 집사람이 클리블랜드를 좋아하는데 대표선수인 르브론 제임스가 마이애미로 이적을 했다. 그 마이애미가 내일 클리블랜드 원정 경기를 한다고 다들 난리다."  농구 얘기를 할 때는 신이 난 표정이었습니다. 문득 농구광인 오바마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론 커크 대표도 코드 인사 아닌가 싶었습니다.(근거없는 제 감에 의한 추측일 뿐입니다.) 

이런 론 커크 대표도 협상을 모두 마치고 나갈 때는 얘기를 길게 했습니다. 이례적으로.." 잠시 후에 김종훈 본부장이 자세한 내용을 다 말할 것입니다." "협상이 성공했나요? 잘된 겁니까?" "고맙습니다. 여러분".. 아주 길었지만 아무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아 결국 뉴스에는 쓰지 못했습니다.

12월 3일 오전 8시 마지막 협상이 진행중일 때 협상장 밖 모습입니다. 미국 무역대표부 직원 두 명이 열심히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왼쪽에 앉아있는 여성이 캐롤이라고 미 무역대표부 대변인인데요, 협상이 시작되기만 하면 한국 취재진들을 협상장 아래층으로 내몰고 통제하는 골목대장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그래도 밤이 되면 전체적인 상황을 간략하게라도 정리해줘서 도움이 되곤 했는데요, 마지막 말은 항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협상이 내일은 언제 시작되나? " "나는 오늘밤 일정까지만 알고 있다. 내일 일은 모른다. 미안하다." 한국과 미국 언론의 취재스타일이 다르긴 했는데요(미국은 정부측이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언론의 협조를 이끌어냅니다. 반면에 한국 언론은 상당히 공격적이고 도전적이죠.), 한국 취재진들이 김종훈 본부장을 따라 붙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미국 기자들은 론 커크가 나와도 그냥 지켜보기만 하더군요. 무역대표부가 어차피 발표한 내용 이상은 아무 얘기 안 한다는 거죠. 그러더니 둘째날부터는 슬그머니 한국 기자들을 따라 김종훈 본부장을 취재했습니다. 워낙 미국쪽에서 나오는 내용이 없다 보니 어떻게든 기사를 쓰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협상내용은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자세히 됐으니까 더 설명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내용은 끝내 구체적으로 설명받지 못한 채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만 보도했지만, 그래도 역사의 한 현장을 또 지켜봤다는 보람은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모습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그 부분은 꼭 짚고 싶습니다.

먼저 한국과 미국 대표단이 협상을 타결해 놓고도 언론앞에서 악수를 하는 일종의 타결 세리모니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은 겁니다. 마지막 협상이 한 20분 진행됐고요, 다른 대표단들이 협상장을 나간 뒤 김종훈 본부장과 론 커크 대표는 따로 옆방에서 한 10분 정도 더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김종훈 본부장이 방안에 남아있고 론 커크 대표가 먼저 나갔습니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 두 사람이 인삿말을 주고 받는 게 들리기는 했지만 둘 사이에만 오간 짧은 인사였습니다. 왜 이 역사적인, 중요한 협상을 타결한 주역들이 그 순간을 상징하는 모습을 공개하지 않았을까요? 

이 부분과 연관되는 관측들이 있습니다. 최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한미 공조가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 협상에서 자칫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관측,  어떤 형태로든 타결되면 결국 안보를 댓가로 경제적 실리를 미국에 넘겨줬다는 부정적 평가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 말입니다. 의도적으로 이런 장면을 만들지 않기로 서로 합의한 것이냐는 질문에 한국 대표단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부분은 바로 발표 시기와 방식이었습니다. 최종 협상을 마치고 바쁘게 공항으로 가야 하는 김종훈 본부장은 기자들의 계속된 질문에 "구체적인 협상내용은 본국 정부와의 협의를 마친 뒤 한미 정부가 동시에 발표합니다."고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시간 정도 후, 김본부장이 아직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가고 있는 도중에 미국 무역대표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합의내용중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그 보다 전에 미 백악관은 배경설명과 타결내용 브리핑까지 했습니다.이 시간은 김본부장이 막 비행기를 타던 때입니다. 아주 빨리 공개한 거죠. 물론 엠바고를 걸어서 미국 시각으로 저녁 7시에 백악관과 유에스티알 홈페이지에 내용이 실리기는 했습니다만... 

타결된 날이 미국시각으로 금요일이고, 내용이 알려진 게 금요일 밤이어서 전파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김종훈 본부장의 말과 분명히 다른 부분입니다. 상식적으로는 김종훈 본부장의 말이 맞습니다. 나라와 나라간 협상이 매듭지어지면, 시차를  감안해서 두 나라가 동시에 그 내용을 발표하는 게 국제관행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것도 협상 내용 전체를 공개한 게 아니라 자기들이 많이 받아낸 자동차 부분만 먼저 슬며시 흘리는 형식으로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저도 어안이 벙벙하고, 한국의 통상교섭본부 담당 기자들도 뒷통수를 맞은 형국인데요, 한국 대표단과 대사관 사람들은 저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도 영문을 모르겠다. 미국이 왜 이렇게 하는 건지, 김종훈 단장이 미리 양해를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사전에 한미가 이런 형태의 엇박자식 공개에 합의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김본부장은 인천공항에 도착한 직후 기자들에게 "미국이 공개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어떤 내용을 공개했는냐, 사전에 우리측이 미국이 먼저 발표하는 것을 양해한 적이 전혀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미국 측이 한국 측 양해 없이 발표한 것이라면 분명 한국 측에 사과와 유감의 뜻을 사후에라도 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 정부 관계자 누구로부터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단순한 실수나 착오로 그랬을 수 있다고 하지만, 백악관이 사전에 친절하게 브리핑까지 한 것 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도 저도 아니면 미국 정부는 국민의 알권리를 대단히 중시하는 반면 한국 정부는 소극적이라는 해석도 나올 법 합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협상 내용 전체를 공개한 게 아니어서 그런 해석도 타당성을 잃습니다.

남은 것은 1차 추가협상 타결에 실패한 뒤 정치적 위기 상황에 몰린 오바마 행정부가 자동차 부문에서 많은 것을 얻어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일찍 국민들에게 알려 정치적 상황을 호전시키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그럴 듯 합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국에 대한 외교적 결례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제 한국과 미국에서는 의회 비준 문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질 겁니다. 이미 시작됐고요. 한국의 통상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될 한미 FTA 타결은 분명 큰 뉴스이지만, 뒷맛이 깔끔하지 않다는 게 일주일 가까이 현장 취재를 했던 기자들의 공통된 인식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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