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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취재기] 차 당장 빼!

언론은 연평도 주민들의 아픔을 얼마나 함께 나눴을까?

연평도에서 겪은 일 하나 더 남겨보려 합니다. 허겁지겁 간신히 섬에 들어간 게 25일(木) 오후였고, 다음날인 26일(金) 저의 역할은 하루종일 중계차를 타며 섬 분위기를 시청자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중계차에는 장비가 참 많이 있습니다. 저도 잘 알 수 없는 갖가지 기술장비와 전원을 끌어다 쓰는 문제 때문에 필요한 발전기 등까지, 뉴스시간에 중계차 앞에 서서 소식을 전달하는 시간은 길어야 3분이 넘지 않지만 열 명 이상의 중계 스태프에 차량도 큰 트럭이 3대는 족히 필요합니다.

전날은 시간이 촉박해서 폐허로 변한 집 근처에서 급하게 섭외한 장소 앞에서 김종원 선배가 8시 중계차를 탔고요. 26일부터는 좀 더 폐허현장을 생생히 보여줄 수 있는 골목 안 쪽으로 중계 포인트를 옮겼습니다. 트럭과 장비들은 큰길가에 두고, 다행히 포탄에 맞지 않은 집 사이 골목으로 한 블럭 지나가면 완전히 파괴된 섬 상가밀집지역이 나오는데요. 그곳입니다. 문제는 아침뉴스(6시, 6시 반, 7시) 중계차를 탄 뒤에 일어났습니다.

연평초등학교로 돌아가 오전 뉴스에 어떤 내용을 기사에 추가해야 할지 취재하고 있었는데 중계팀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주민 한 분이 당장 꺼지라며 소리를 지르고 계신다고 와보라는 겁니다. 급하게 뛰어갔죠.

SBS 중계차가 세워져 있던 곳은 남쪽 해안도로 변에 있는 어떤 집 앞이었는데요. 김장하려고 숨을 죽여놓은 배추가 그대로 함지박 안에 쌓여 있던 집이었습니다. 아저씨 한 분이 오늘 김장해야 한다면서 당장 차를 치우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거칠게 화를 내고 계셨습니다. 전날 저희 뉴스에 김장하려고 담가둔 배추도 다듬다 말고 방치돼 있다는 보도가 나갔는데요. 아저씨는 사람 멀쩡히 있는데 뉴스에 거짓말을 한다며 물이 중계장비에 튈 정도로 휙휙 뿌려대시며 배추를 손질하고 계셨습니다.

저희 중계차가 집 앞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공간이 좁았던 건 사실이지만, 김장을 방해하려 한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그렇다고 당장 차를 빼면 또 다른 중계 포인트를 물색하는 것도 좁은 섬에서 마땅치가 않았기 때문에 사정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저희가 선생님 댁을 가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고요. 물만 안 튀게 해주시면 차를 조금 도로 옆으로 빼더라도 저 골목에 카메라 장비까지 전선만 연결해서 중계차만 탈 수 있게 좀 허락해주시면 안 될지.."

아저씨는 전날 뉴스에 화가 많이 나셨는지 모든 언론 자체에 증오섞이 욕설을 하고 계셨습니다. "카메라로 나 찍으면 다 죽여버릴거야! 당장 차 빼!"

뉴스 시간은 다가오는데 정말 막무가내였습니다. 중계차 탈 장소가 필요했을 뿐이지 그 분을 취재하거나 배추를 취재할 생각도 없었는데도 당장 꺼지라는 식이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선생님 댁을 찍겠다는 게 아니라.."

순간 아저씨가 저를 홱 노려보더니 거친 욕을 내뱉으며 제 얼굴을 한 대 세게 치시더군요. 안경이 저 멀리 날아갈 정도였습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우리집이 어쩌고 어째 임마?!"

일단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맞았다는 생각에 욱하기도 했고, 억울하고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뉴스 시간에 맞춰 방송을 하는 게 중요했으니까요. 부랴부랴 다른 폐허지역 근처로 차를 옮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 종일 왜 이렇게 주민들이 언론에 적대적인 걸까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억울하기도 했지만 섬에 조금 있다 보니 이유를 알 것도 같았습니다. 대부분 주민들이 인천으로 몸을 피하고 섬에 남아 있는 주민은 30명 내외였습니다. 면사무소, 파출소, 소방서 직원들을 포함해도 원래 섬에 살던 사람들은 백 명 남짓이었습니다. 반면에 이 일이 터지자 정말 밀물처럼 섬으로 밀려들어온 기자와 취재진은 족히 200명을 넘었습니다. 주민 한 분에게 똑같은 내용을 이 기자가 묻고, 저 기자가 묻고 하루에도 수십 번은 같은 표정으로 심정은 어떤지 말 좀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습니다.

삶의 터전은 폐허가 됐고, 복구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에서 앞으로 또 어떤 사단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군은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통제만 하고, 관청에서도 당장 뾰족한 대책을 세워주지 못하는 막막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기자들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야속했을까요?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기름 부으러 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가 무례하게 군 건 결코 아니었지만 평소엔 관심도 없다가 이런 일 터지니까 벌떼처럼 모여들어서 떠들어댄다고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게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저씨 집은 포탄에 맞아 말그대로 산산조각났습니다. 아침에 있던 중계 포인트에서 뒷편으로 보이는 뼈대도 사라진 그 건물이더군요. 다행히 일이 터졌을 때 집 안에 안 계셔서 화는 면했지만 앞으로 대책도 막막한데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를 생각해보니 섬 상황, 분위기를 생생하게 알리겠다며 연평도에 들어가 있는 제가 잠시나마 무기력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번 일처럼 큰 일이 터졌을 때 현장에 가서 참상을 전하고, 이렇게 된 원인을 분석해 원인을 제공한 집단을 비난할 수 있도록 생생히 알리는 일은 언론의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고 기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중요한 일을 하러 가서 정작 주민들에겐 아무런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상처만 주고 온 건 아닌지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추운 날 아침부터 정신 번쩍 들 정도로 얼굴을 한 대 맞은 것보다 더 아픈 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마땅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북한군의 도발로 만신창이가 된 연평도와 그 섬에서 터전을 가꿔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장 뾰족한 수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은 불안하지 않도록, 한 줄기 희망이라도 빛을 줄 수 있도록 주거대책과 조업대책이라도 빨리 협의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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